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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11. 2020

15. 침상 안정, 오른쪽 다리 신경이 끊어졌다고요?

이상하리만치 개운하게 마취에서 깼다.


웃으며 얘기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의 얼굴은 완전 사색이 되어 있었다. 아침 8시쯤 수술 시작한다고 문자가 왔는데 12시 넘어도 연락이 없으니 또 큰일이 났나 걱정이 되었겠지. 애초에 2-3시간으로 예정되어 있던 수술이 왜 길어진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수술을 집도하신 선생님이 내 병실에 오셔야 알 수 있는 거니 지금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찬찬히 내 몸을 살펴보니 어김없이 소변줄이 끼워져 있었고 무통주사가 연결되어 있어서인지 견딜만했다. 아, 그리고 커다란 피주머니 하나가 오른쪽 배 쪽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또 내일부터는 열심히 운동하라고 얘기하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거 웬 걸. 오른쪽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살짝 만져보니 감각도 없고 뭔가 고장 난 기계 같은 느낌이었다. 마침 상태를 보러 온 간호사 선생님께 오른쪽 다리가 아예 안 움직여진다고 왜 그런 건지 물어보았다.


당연하죠. 방광요관재문합술하고 요관 부목 끼면서 허벅지 신경을 건드리고 그걸 이어놨으니 절대 움직이시면 안 돼요. 오늘부터 3일간 침상 안정이니 화장실도 가시면 안 돼요.


여기서 잠깐! 침상 안정이란?


종일 침대 위에서 생활한다는 정도의 안정을 나타내는 말. 그러나 실제로는 시설에 따라서 그 정도에는 약간 차이가 있으며 절대 안정에 가까운 상태에서 화장실 보행이 가능하다는 상태까지 여러 가지이다.

난 화장실도 소변백이 있으니 안 움직이고 누워만 있으란다. 다리로 쭉 뻗고 있어야 하고 몸도 바른 자세로 누워 있으라고 했다. 잠버릇 고약한 내가 공주님처럼 예쁘게 잘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어쩌지?


오후 3시가 넘어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수술은 잘 됐고 자신은 산부인과 쪽 얘기만 하자면 나팔관을 잘랐고 이전 자궁 수술한 것의 이상 여부를 체크했으며 결론을 얘기하자면 더 이상 신경 쓸 것 없이 말끔히 정리하셨다고 했다. 나팔관은 왜 제거했냐니 오른쪽 난소를 절제해도 나팔관이 있으면 암이 발생할 수 있어 아예 제거했다고 하셨다.


왜, 그거 있어야 해요? 필요 없어.


역시 이 선생님은 뭔가 불친절한데 기분이 안 나쁘다. 필요한 말만 하시고 진짜 자신 있어서 내가 잘한다고 하는 사람 같은?


지난번 여성병원 수술하고 가스 나오고 대변보았냐고 묻기에 다 잘 봤다고 대답했다.


그럼 내일부터 식사해요. 밥 먹고 싶죠? 물은 저녁부터 먹고.


커피 마셔도 되냐고 물으니


그건 내일부터 먹어라. 에휴, 꼭 먹어야겠어요?


네! 꼭 먹고 싶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뇨기 의학과 의사 선생님도 나를 찾아오셨다. 수술이 왜 길어졌는지 설명해주시면서 수술 자체가 힘든 건 아니었고 수술을 위한 준비 과정이 조금 지체되었다고 걱정했냐고 물으셨다. 계획한 대로 수술이 잘 되었고 지금 요관 스텐트가 끼워져 있다고 얘기해 주셨다. 이 스텐트 보통 6주에서 8주를 끼고 빼는데 별 이상이 없다면 한 번으로 끝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오른쪽 다리에 대해서도 여쭤보니 움직이면 꼬매 놓은 게 끊어질 수 있으니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왜 방광요관재문합술에 요관 스텐트를 끼우는 과정에서 오른쪽 허벅지 신경이 끊어진 건지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들은 그들만의 언어를 쓰는 듯하다. 아주 당연한 듯 얘기하는데 너무 놀랍고 황당한 일들이 많은 것 같달까?


설마 오른쪽 다리를 평생 절게 되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나는 또 잠을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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