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리만치 개운하게 마취에서 깼다.
웃으며 얘기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의 얼굴은 완전 사색이 되어 있었다. 아침 8시쯤 수술 시작한다고 문자가 왔는데 12시 넘어도 연락이 없으니 또 큰일이 났나 걱정이 되었겠지. 애초에 2-3시간으로 예정되어 있던 수술이 왜 길어진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수술을 집도하신 선생님이 내 병실에 오셔야 알 수 있는 거니 지금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찬찬히 내 몸을 살펴보니 어김없이 소변줄이 끼워져 있었고 무통주사가 연결되어 있어서인지 견딜만했다. 아, 그리고 커다란 피주머니 하나가 오른쪽 배 쪽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또 내일부터는 열심히 운동하라고 얘기하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거 웬 걸. 오른쪽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살짝 만져보니 감각도 없고 뭔가 고장 난 기계 같은 느낌이었다. 마침 상태를 보러 온 간호사 선생님께 오른쪽 다리가 아예 안 움직여진다고 왜 그런 건지 물어보았다.
당연하죠. 방광요관재문합술하고 요관 부목 끼면서 허벅지 신경을 건드리고 그걸 이어놨으니 절대 움직이시면 안 돼요. 오늘부터 3일간 침상 안정이니 화장실도 가시면 안 돼요.
여기서 잠깐! 침상 안정이란?
종일 침대 위에서 생활한다는 정도의 안정을 나타내는 말. 그러나 실제로는 시설에 따라서 그 정도에는 약간 차이가 있으며 절대 안정에 가까운 상태에서 화장실 보행이 가능하다는 상태까지 여러 가지이다.
난 화장실도 소변백이 있으니 안 움직이고 누워만 있으란다. 다리로 쭉 뻗고 있어야 하고 몸도 바른 자세로 누워 있으라고 했다. 잠버릇 고약한 내가 공주님처럼 예쁘게 잘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어쩌지?
오후 3시가 넘어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수술은 잘 됐고 자신은 산부인과 쪽 얘기만 하자면 나팔관을 잘랐고 이전 자궁 수술한 것의 이상 여부를 체크했으며 결론을 얘기하자면 더 이상 신경 쓸 것 없이 말끔히 정리하셨다고 했다. 나팔관은 왜 제거했냐니 오른쪽 난소를 절제해도 나팔관이 있으면 암이 발생할 수 있어 아예 제거했다고 하셨다.
왜, 그거 있어야 해요? 필요 없어.
역시 이 선생님은 뭔가 불친절한데 기분이 안 나쁘다. 필요한 말만 하시고 진짜 자신 있어서 내가 잘한다고 하는 사람 같은?
지난번 여성병원 수술하고 가스 나오고 대변보았냐고 묻기에 다 잘 봤다고 대답했다.
그럼 내일부터 식사해요. 밥 먹고 싶죠? 물은 저녁부터 먹고.
커피 마셔도 되냐고 물으니
그건 내일부터 먹어라. 에휴, 꼭 먹어야겠어요?
네! 꼭 먹고 싶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뇨기 의학과 의사 선생님도 나를 찾아오셨다. 수술이 왜 길어졌는지 설명해주시면서 수술 자체가 힘든 건 아니었고 수술을 위한 준비 과정이 조금 지체되었다고 걱정했냐고 물으셨다. 계획한 대로 수술이 잘 되었고 지금 요관 스텐트가 끼워져 있다고 얘기해 주셨다. 이 스텐트 보통 6주에서 8주를 끼고 빼는데 별 이상이 없다면 한 번으로 끝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오른쪽 다리에 대해서도 여쭤보니 움직이면 꼬매 놓은 게 끊어질 수 있으니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왜 방광요관재문합술에 요관 스텐트를 끼우는 과정에서 오른쪽 허벅지 신경이 끊어진 건지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들은 그들만의 언어를 쓰는 듯하다. 아주 당연한 듯 얘기하는데 너무 놀랍고 황당한 일들이 많은 것 같달까?
설마 오른쪽 다리를 평생 절게 되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나는 또 잠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