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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11. 2020

16.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어제 수술을 마치고 나니 밤새 피가 섞인 소변과 살덩어리가 같은 것이 관을 타고 소변백에 모이는 것이 보였다. 수술 직후니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은 이해가 됐는데 작은 덩어리일지언정 살점이 떨어져 나오는 것을 직접 본다는 건 좀 징그러운 일이었다. 무통주사가 들어있는 투명한 튜브도 하루치만 처방되어서인지 수술 다음 날 아침에는 내용물이 쪼그라들어 홀쭉한 모양이 되어 있었다.


여성병원에서 자궁수술을 했을 때는 기본적으로 이틀 치 무통주사를 처방했었는데 이 병원에서는 하루치가 기본이고 이틀 치 무통주사는 옵션처럼 추가 신청을 해야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죽을 것처럼 아파 마약성 진통제가 필요할 정도의 통증은 아니었는데 문제는 오른쪽 다리를 움직이면 안 되고 복근에 힘도 줄 수 없어 앉아 있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보호자 상주가 안 되는 간호 통합 병동이라는 말이 우스울 정도로 제대로 앉을 수도 없고 오른팔에 링거를 꽂은 데다 팔에 힘도 없는 환자가 밥을 먹는지 마는지 관심이 전혀 없었다. 아침은 미음이 나왔는데 침대를 조작해서 앉는 자세를 얼추 취하기는 해도 식판이 있는 테이블까지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팔도 후들거려 숟가락을 놓치니 한 술도 뜰 수가 없었다.


점심 때는 말간 흰 죽이 나왔는데 열흘 가까이 금식하다 식사를 시작하는 환자에게 처음 주는 반찬이 갈비찜, 매운 김치 같은 짜고 자극적이며 소화가 힘든 반찬이라니. 여기 병원은 진짜 센스가 없는 건지 아니면 환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았다. 식판을 가져다주시는 아주머니께서 테이블에 식판을 올려주면 그냥 쳐다만 보다 밥을 물리니 오후 3시쯤 수간호사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왜 식사를 안 하세요.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


진짜 내가 왜 밥을 못 먹었는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다리도 안 움직여지고 복근에 힘이 없어 거동 자체가 힘든데 저 테이블까지 어떻게 움직여요? 도와주는 분이 전혀 없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단 한 번도 안 도와주시던데요.  보호자 상주도 못하게 하시면 최소한 식판을 제가 먹을 수 있게 제 무릎에라도 올려주시던지 아님 누가 좀 도와주세요. 아님 간병인 쓰게 해 주세요.


본인은 이 사정을 전혀 모르셨다는 수간호사님.

그렇지, 알면서 그랬으면 그건 진짜 나쁜 사람이지. 그래서 저녁부터 식사를 도와주었느냐? 그건 아니고 남편이 면회를 와서 내 몸을 테이블 쪽으로 옮겨준 덕분에 모처럼 식사다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것도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면회를 하려면 환자가 면회실, 그러니까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소파로 나가서 만나야 한다며 남편의 출입을 막았다고 한다. 근데 침상 안정인 ㅇㅇㅇ 환자인데 어떻게 나오냐니 그제야 출입을 허가해 주었다고 한다. 애초에 출입문에서 내 이름을 알려주며 보호자라고 얘기했는데 아마도 환자가 한 층에 40명쯤 되니 각 환자별 특징 파악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남편은 내가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아이스 돌체 라테를 사들고 왔지만 딱 두 모금을 마시고 나니 더 이상 넘어가질 않았다. 평소 커피라면 사족을 못 쓰던 내가 커피맛을 못 느끼다니! 이상하리만치 입맛이 없었다. 모처럼 먹은 저녁도 몇 숟갈을 먹다 남편에게 넘겼다. 남기는 건 아까우니까. 결국 나는 커피 두 모금에 죽 몇 숟갈로 열흘 가까운 금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병원에 있으면 있을수록 간호 통합 병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게 되었다. 일반 병실에 비해 돈을 더 받으면서도 딱히 챙겨주는 게 없는데 왜 나는 그들에게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걸까? 주말이라 간호조무사님들의 수가 적어서라는데 이 말도 좀 웃긴 건 아닌가? 주말에는 환자가 갑자기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일하는 간호조무사의 수가 적다니! 뭘 말 같지 않은 변명인 걸까?


면회 시간이 끝나고 남편이 돌아가니 이불을 덮어줄 사람도 물을 떠다 줄 사람도 꽉 찬 소변백이 무거워 소변줄이 당겨져 느낌이 이상한데도 이 소변백을 비워줄 사람이 없었다. 간호 통합? 간호사 선생님들이 게으르다는 게 아니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데 무슨 간호 간병을 해준다는 건지. 다시는 이 병원에는 입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절대!


이 병원 내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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