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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12. 2020

18. 저 퇴원할 수 있는 거 진짜 맞죠?

기저귀를 차고 똥을 싸고 싶지는 않았던 나는 대변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물론 아주 급박한 상황이라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참을 수 있을 때까지는 온 힘을 다해 참아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사실 혹시나 대변보려고 힘을 주다가 소변줄을 껴 놓은 것이 빠질까 염려되어 대변보기를 포기한 것도 있다. 당연히 내일 퇴원 전에는 이 소변줄을 뺄 것이라 기대했으니까.


퇴원하기 전 피검사를 해야 한다며 내 피를 아주 양껏 뽑아갔고 체온과 혈압, 산소 포화도도 체크하는데 지극히 정상으로 잘 나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절대 열이 나도 안 되고 혈압이 올라도 안 되니 최대한 침대에 바르고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면회 후 집에 홀로 있던 남편은 내가 돌아올 집을 청소했다며 전화를 했다. 마누라가 그립고 안쓰럽고 속상함이 가득한 얼굴. 짜식, 마누라가 귀한 줄 이제 제대로 알았지?


좀 쉬면서 내일 퇴원할 일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퇴원 수속을 아침 일찍, 빨리 밟아야 하니 돈 낼 분(여성병원 관계자 분)이 9시 즈음에는 오셔야 할 거라고 했다. 음. 퇴원은 시켜줄 모양이군. 12일간의 병원 생활이 끝난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혹여나 무슨 이유로든 퇴원이 불발되진 않을까 불안했지만 막연하게 난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찍 잠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드디어 링거 줄이 제거되었다. 다만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에게 확인을 받아야 퇴원이 가능하니 기다려 보라고 전달해주셨다. 뭘 확인해야 하냐고 물으니


저희 병원은 수술 시에 본드를 썼는데 지난 여성병원 수술에서는 실로 꿰매 놓으셔서 그 실밥을 빼야 해요. 그리고 피주머니도 제거하면서 그 부분도 어찌할지 체크하신데요.


사실, 수술한 내 배를 볼 자신이 없어 실이 있는지 본드가 붙어있는지 보지 않았다. 거즈로 가려져 있기도 했지만 상처가 많다는 걸 실제로 보는 순간, 내 감정이 어떨지 나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 혹시나 놀라거나 화가 나거나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할지도 모르니 아직은 외면하고 싶었다.


링거줄을 빼고 나서는 남은 짐들을 정리하고 (어제 남편이 면회를 와서 웬만한 것들이 이미 가져간 상황이었다.) 세수와 양치를 하고 침대를 정리했다. 환자들이 많이 놓고 퇴원한다는 핸드폰 충전기를 챙겨두고 에어팟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툭툭 어깨를 두드리셨다.


잠깐이라도 운동하시는 게 어떨까요? 살살 걸어보세요.


그래, 지금 침상 안정이라고 3일 내내 침대에 있었으니 내 몸이 이상할 거야. 오른 다리도 움직여지나 봐야지. 땅에 두 다리를 디디려고 했는데 오른 다리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절뚝절뚝. 마치 오른쪽 다리가 짧아진 듯, 걸음걸이가 이상해졌다. 간호사 선생님께선 별 문제는 없을 거라고 살살 걸어보라고 하셨다.


병실을 나와 복도는 100 발자국쯤 걸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안개가 끼는 듯 시야가 흐려지는 느낌이었다. 간신히 링거 거치대를 붙잡고 다시 내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이건 빈혈이었다. 근종 힐링카페 글 중 퇴원 직전 피검사에서 빈혈 수치가 안 좋으면 며칠 더 입원해야 한다는데. 정말 이 곳에 더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 퇴원할 수 있는 거 맞겠지?

불안한 내 마음처럼 하늘에게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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