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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12. 2020

19. 소변줄을 끼고 퇴원하라고요?

침대에 잠시 누워 쉬고나니 어지러웠던 머리가 겨우 안정이 되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는 아무래도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외래 진료가 많아 퇴원 가능 확인이 미뤄질 거라고 얘기하셨다. 아니, 어제는 퇴원 수속 빨리 받으라더니 오후 2-3시까지 기다리라고? 남편이 오후에는 회사에 들어가야 했기에 오후 퇴원을 하려면 나 혼자 해야 한다는 거였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짐도 있고 비도 이렇게 오는 날, 나 혼자 퇴원하라고?


혹시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외래 진료실에 내가 직접 가도 되겠냐고 물으니 확인해보겠다고 말씀하셨다. 잠시 후, 어떤 종이 하나를 주시더니 이걸 산부인과 외래 진료 접수처에 주면 된다며, 기사님이 오시면 휠체어를 타고 이동시켜 주겠다고 했다. 링거가 없어 사실 나 혼자 이동해도 되는 거였지만 거리가 멀고 복잡해 기사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았다.


기사님이 휠체어를 가지고 오셨고 외래 진료증을 본인이 가지고 있겠다고 해서 건네준 후 또 복잡한 병원 내 이동을 경험했다. 이 병원은 참 여기저기 건물도 많고 근데 가깝게 있지도 않는구나, 또 한 번 체감하는 기회였다. 이동하는 사이 병원에 도착한 남편은 어디에 있냐고 전화가 왔고 산부인과 외래 왔는데 길이 복잡하니 그냥 병실에서 기다리라고 얘기했다.


산부인과 외래 접수처에 종이를 주니 5분도 지나지 않아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역시 굴욕 의자에 앉았지만 배꼽과 배꼽 아래 개복 자국 근처만 보면 되는 거라 바지를 벗진 않았다. 배꼽에 복강경 수술 본드 부분을 한 번 봐주시고 배꼽 아래 개복수술 실밥을 제거해주시는데 으악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물론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셨다. ^^ 역시 쿨한 분이다. 피주머니를 빼고 그 부분은 의료용 스테이플러로 쾅쾅 두 방을 찍어주셨는데 일주일 후 외래 진료 때 빼줄 거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이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빈혈약 처방했으니 잘 먹으라고 하시며 잘 가라고 하셨다.


진료실을 나가니 그 사이 남편이 와 기다리고 있었고 휠체어를 끌어줄 기사님이 와야 이동할 수 있다기에 잠시 기다린 후 병실로 이동했다. 여성병원 관계자가 도착한 후 병원비를 다 수납하자 퇴원이 확정되었고 외래 진료 전까지 먹을 약들이 한 아름 안겨주셨다. 각 약을 먹는 방법과 횟수를 알려주시며


근데 빈혈 수치가   좋아요. 저희 선생님이 수혈을 싫어하셔서 그냥 집에 가서 쉬시라는데  드셔야 해요. 붉은 고기, 소고기 많이 드세요.


도대체 몇 정도길래 안 좋은 것이냐고 물으니, 7.8.

정상이 12, 13인데 7.8이면 진짜 걷기만 해도 픽 쓰러질 수치였다. 근데 아까 나보고 좀 걸으라던 간호사 선생님! 진짜 혼내고 싶었다. ^^ 퇴원해서 기분 좋으니까 내가 봐준다만.


이 소변줄은 언제 빼주냐고 물으니 외래 진료 전까지 끼고 있으란다. 방광을 쉬게 해줘야 해서 일주일은 더 하고 있어야 한다고.


뭐라고! 이 소변줄을 끼고 집으로 가라고?


결국 나는 오른 허벅지에 소변백을 부착한 후(소변백이 콩팥보다 더 아래에 있어야 소변이 제대로 나온다. 소변백에는 밸크로가 있어 허벅지에 감싸고 고정 가능하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병원을 나왔다.


하늘에서는 비가 주룩주룩, 내 눈에서는 피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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