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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12. 2020

20. 퇴원 후, 새로운 시련의 시작

여성병원에 보내주신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40여분 동안, 나는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퇴원을 하면서도 소변줄을 빼지 못하니 팬티도 입지 못한 체 헐렁한 반바지에 원피스를 입은 내 모습이 처량했다. 일주일 후, 외래 진료에서 검사를 거친 후에 방광 기능이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아야만 소변줄을 뺄 수 있다는 그 말. 만일 경과가 안 좋다면 좀 더 길게 하고 있어야 한다는 그 말이 무서웠다.


당장 주말부터 수업을 시작하기로 약속되어 있는 상황이었는데 소변백을 들고 수업할 자신이 없어 상황을 설명한 후 수업 시작을 미뤄두었다. 수업을 미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간의 의료사고에 대해 학부모들과 학원 관계자들에게 설명해야 했는데 그 이후 빗발치는 문자와 카톡, 전화.


사실 답장이건 통화건 어느 것 하나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순간 가장 불행한 사람은 나일 거라는 못난 생각이 내 마음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오래간만에 아파트 현관에 있는 계단 3개를 올라가려는 데도 요관 스텐트 끝 부분이 방광을 자극하고 소변줄은 다리를 들 때마다 방광 안 쪽 벽을 찔러댔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알지 못할 기분 나쁜 통증과 수치심이 나를 괴롭혔다.


평소 침대를 사용하지 않아 매트를 깔고 자던 나에게 콩팥보다 아래쪽으로 소변백을 두고 있어야 소변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부랴부랴 간이침대를 준비해 준 남편 덕분에 몸을 눕히고 소변백을 침대 아래에 둘 수 있었지만 소변백이 소변을 찰 때마다 무거워지면 소변줄이 아래쪽으로 축 쳐지며 방광을 자극했고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1시간 반마다 일어나 소변을 비워야 했다.


그나마 남편이 곁에 있을 때는 오줌싸개라고 놀리며 빨리 소변을 비워줬지만 출근 후 혼자 있는 시간마다 움직여지지 않는 오른 다리를 질질 끌어가며 직접 소변을 비웠다. 오줌 양이 많았던 이유는 요관 스텐트를 끼고 나면 최소 2L 이상의 물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을 많이 먹으니 쉽게 배가 차고 가뜩이나 입맛도 없었던 나는 밥 세 숟갈도 넘기기 힘들어 기운 없이 축 쳐져있기만 했다.


운동? ㅎ

오른 다리는 질질 끄는 병신에 소변백은 들고 빈혈로 띵한 주제에 운동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을 힘도 없어 와이파이가 빵빵한 집에서도 유튜브 영상을 볼 수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큰 소리가 나면 신경이 예민한 상태라 그런지 짜증이 나고 화까지 났다. 남편이 밥 좀 먹으라고 다그치면 숟가락을 확 집어던질 정도로 온갖 패악질을 부렸다. 수술만 마치면 다 끝날 줄 알았던 통증이 계속 지속되고 예전에 나로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기에 좌절했다.


몸이 병신이 되니 마음까지 병신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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