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수술 후 첫 수업이 시작됐다.
확실히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평소보다 목소리의 기운이 없고 똑 부러지는 맛이 나질 않았다. 예전처럼 야무지고 단단하던 내 강의톤으로 돌아오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온갖 잡념들로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 활짝 웃으며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그리고 그들에 부모들에게 내가 아팠던 사람이니 뭔가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의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멋진 선생이고 늘 믿음 가는 사람임을 이 자리에서 완벽하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근데요, 선생님. 살이 많이 빠지셨는데 더 예뻐지셨어요.
녀석, 참 센스 있다. ^^
기분 좋으라고, 기운 내라고 립서비스를 해주는 고마운 녀석 때문에 진짜로 웃을 수 있었다. 근데 뭐가 예뻐졌겠는가. 원래도 불뚝 튀어나왔던 광대는 더 부각되고 가뜩이나 움푹 들어간 눈매는 더 꺼졌으며 볼살은 가출했는지 홀쭉한데. 거울 속 나를 바라보면 나마저도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데 예뻐졌다는 말은 기도 안 차는 뻥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내 수술 후기에 대해서도 많이 궁금해했다. 왜 의료사고가 난 건지, 왜 또 다른 수술이 진행된 건지. 그간의 과정들을 간략히 설명하고 나니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애들아, 나 안 불쌍해라고 설명해봤자 이미 나는 불쌍한 선생이 되었다.
그래, 나 안쓰럽고 불쌍하면 중간고사나 잘 봐. 장기 몇 개 빼고도 너희들 때문에 수업하러 나온 선생님 생각 좀 해줘. 알았지?
없어진 자궁과 난소를 농담거리로 삼아 얘기하며 다시 수업 진도를 나갔다. 이 첫 수업을 시작으로 이 날 2시간짜리 수업 3개를 마치고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몸은 물 먹은 솜처럼 축 쳐진 느낌이었지만 정신만은 상쾌했다. 아직 내가 쓸모 있는 인간임을 증명한 하루였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내게, 첫 수업은 잃어버린 난소와 찌리릿한 방광을 잊게 할 만큼 짜릿하고 기쁜 시간이었다.
바이, 나의 난소.
하이, 나의 새로운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