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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15. 2020

24. 오줌싸개! 용기를 내다.

비뇨기 의학과 진료가 끝나고 산부인과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다른 건물로 이동했다. 이 병원은 온 동네 건물을 사서 병원 스트리트를 만드려고 하려는 듯 건물들 간에 거리도 어찌나 먼지. 길 건너서도 한참 뒤로 걸어가서야 산부인과 외래 진료 건물이 나왔다. 진짜 떼돈을 버는 것이 분명했다. 이사장님! 부자 되시겠어요. 아, 이미 부자이신가요? ^^


내가 마지막 진료였는지 접수하자마자 바로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을 뵐 수 있었다. 굴욕 의자가 아닌, 일반 의자에 앉아 수술 부위를 봐주셨는데 상처는 아직 덜 아물었다고 흉터 연고 처방을 해야겠다고 하셨다. (이 흉터 연고 작은 주제에 너무 비싸다.) 또 의료용 스테이플러로 박아두었던 곳도 심을 빼주시며 여기저기 살펴보시더니 이제 내가 해줄 일이 더 이상 없다고 하셨다. 궁금한 거 없냐고 물으셔서 피해야 할 음식이 없냐니 그냥 가리는 거 없이 잘 먹으라고. 석류, 홍삼도 매일매일 물 먹듯 먹는 게 아니면 별 문제없다고 하셨다. 역시 이 선생님은 매우 쿨하다! 다만 빈혈이 있으니 빈혈약을 처방해 줄 거고 나중에 요관 스텐트 빼러 올 때 피검사하라고 말씀해주셨다. 아마도 빈혈 수치 변화를 보려고 하신 듯했다.


병원 인근 약국에 가서 처방된 약을 받는데. 진짜 봉지봉지 참 많기도 했다. 아침 식전 30분 후 먹는 볼그래 빈혈약, 아침 식후 30분 후에 먹는 베타미가 과민성 방광 증상 치료제, 자기 전 먹는 하루날디 배뇨장애 개선제. 먹는 시간대도 다 다르다니. 도대체 왜 다 다른 건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 약들을 잘 먹어야 한다는 건 확실했다.


첫 외래 진료 이틀 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기에 수술 후 첫 수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중간고사를 준비해야 하는 고등학생들에게 내 수업 복귀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중학생들은 코로나로 수업 결손이 생겨 중간고사를 보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하는 화장은 몹시 떨리고 긴장이 됐다. 혹시나 내가 아프고 퀭해 보여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이 부담스럽거나 꺼려하지 않을까 걱정되었기에 더 신경 써서 단장을 했다. 두 번의 수술과 한 번의 시술을 거친 나의 몸은 그간 몸무게가 꽤 줄었는지 가지고 있는 모든 옷이 헐렁했다. 하다못해 속옷까지도. 팬티가 헐렁한 정도니 이거 원 ㅎ. 수술 세 번 했다가는 아예 아동복을 입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평소 신던 높은 힐이 아닌 1cm도 안 되는 로퍼를 꺼내고 들고는 한참을 고민했다. 아, 진짜 이건 내 스타일에 안 맞는데. 근데 높은 굽을 신으면 요관 스텐트가 더 방광을 자극하는 듯해 도저히 신을 자신이 없었다. 멋이고 나발이고 열 걸음만 걸어도 오줌 싸고 싶은 느낌이 팍 드는데 무슨 하이힐을 신을까 고민하겠는가. 에휴. 스타일 구기더라도 일단은 살고 봅시다.


오래간만에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며 첫 수업을 하러 갔다. 버스에서는 앉아서 갈 수 있었지만 지하철을 타니 앉을자리가 전혀 없었다. 땀이 나고 허리를 똑바로 펴지 못할 정도로 배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고작 20여분을 서 있으면서도 핏기 없이 몸을 좌우로 비틀거리니 감사하게도 앞에 앉아 계셨던 남자분이 얼른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도저히 서 있을 수 없던 나는 죄송하게도 얼른 자리에 앉았다. 진짜 제대로 민폐 아줌마 짓이구만.


지하철에 내려서는 미칠 듯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야 했다. 막상 변기에 앉으면 소변 양이 많지도 않으면서 계속, 빈번하게 오줌이 마려웠다. 그리고

제대로 소변을 못 본듯한 잔뇨감이 나를 미치게 했다. 이런 상태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우면서도 집에만 있다가는 더 스트레스를 받아 돌아버릴 것 같은, 모순적 감정이 나를 괴롭혔다.


제발 길바닥에서만 오줌 싸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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