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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28. 2020

34. 이제 입양 생각해보시는 건 어때요?

아주 오랜만에 여섯째 이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제 어쩌니? 애는 하나 낳고 수술했으면 아쉽진 않겠다만 아이고. 너 앞으로 괜찮겠니? 남편 하고는 어때?


맙소사.

내 자궁적출, 난소 제거 수술 소식이 저 이모한테까지 전해진 거야? 여섯째 이모와 나는 내가 어릴 때부터 코드가 안 맞는 분이었다. 인성이 나쁘다거나 거짓말을 한다던가 그런 분은 아니지만 전형적인 옛날 분 스타일이라 여자는 예쁘고 다소곳해야 한다고 얘기하던 고리타분한 분이었다. 이런 유교걸인 이모 눈에 비친 어린 시절에 나는 여성스러운 것은 딴 나라 얘기인 똥꼬 발랄한, 늘 이상한 조카였었다.


그런데 그런 천방지축 조카가 아프다니!

내 수술 소식을 안타까워하시는 건지 아니면 훈계를 하려시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계속 안타까워하며 앞으로 어쩌냐고 하시는데, 뭘 어째. 이미 자궁은 없는데 ㅋ.


이 이모뿐 아니라 요새 여기저기서 듣기 거슬리는 충고와 조언을 참 많이도 하신다.


이제 아이는 못 낳으시니 입양을 고려해보시는 건 어때요? 아이가 없으면 부부의 말년은 확실히 힘들더라고요.


나보다 4살 많은 분께서 얼마나 세상만사 경험이 많으신 건지, 부부의 말년을 어찌 그리 잘 아시는지 입양을 적극적으로 권하신다. 이 분 하나뿐이라면 웃고 넘기겠건만 정말 많은 분들이 입양을 권하신다. 아이가 집에 있으면 책임감도 생기고 집안에 생기가 돈다며. ㅎ


입양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난 그냥 남편과 단 둘만으로 충만한 삶을 원하고 있다. 그래서 십 년 넘는 결혼 기간 동안 아이를 낳지 않았고 비교적 이른 나이임에도 자궁적출을 선택했다. 후회도 미련도 없는 수술이었 건만 왜 이렇게들 오지랖이신지 이젠 불쾌한 기분마저 든다.


입양.

입양에 회의적인 이유에는 내 외가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한몫하리라 본다. 내 외가에는 나와 호적상 동갑인 외삼촌이 있는데 내가 중학생 때쯤, 동갑내기 이종사촌이 저 아이를 외삼촌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말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제 입양된 거야. 우리 친 삼촌 아냐. 엄마가 그랬어.


셋째 이모의 딸인 이종사촌은 내게 커다란 비밀 폭탄을 던져준 것이다. 태어나서 쭉 외삼촌이라 생각한 사람이 입양아였다니. 뭐 그래도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하고 난 이 비밀을 못 들을 척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유산 상속에 대해 얘기가 오가며 결국 입양이라는 비밀이 밝혀지고 이모들과 외삼촌은 완벽히 절연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입양에 대해 신중할 수밖에 없다.


또한 내가 성숙한 부모로서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다는 것도 입양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이다. 자식과 달리 부모라는 자리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자리이다. 이 말이 무엇이냐면,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지만 부모가 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이를 통해 얻게 되는 행복은 평생 못 누리겠지만 난 남편과 평온하고 안락한 노후를 꿈꾸고 있다. 그런 내게 입양을 강요하는 것은 무례한 태도이다.


입양을 권하시는 분들!

본인 아이나 제대로 바르게 키우세요.

버릇없이, 개념 없이 민폐 끼치는 인간이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전해줄 인간으로.

그게 부모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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