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수시준비로 큰 돈을 쓰시는 당신께...

by anchovy

예전에 일했던 학원에서 국어 선생님과 짝을 이루어 이과생들의 자소서나 스펙을 관리했던 적이 있다. 나는 수학이나 과학적인 내용의 전문성을 갖추어 글을 쓴다면 내가 쓴 단조롭고 딱딱한 글을 유려하고 화사하게 완성해 주는 것은 국어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일이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역할을 맡고 여러 명의 학생을 관리하다보니 수시 접수가 다가오는 8, 9월에는 거의 매일, 새벽 하늘을 보며 퇴근해야했고 제대로 끼니를 챙긴다는 것은 사치일 정도였다.


이렇게 나와 국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수시 자소서 4개 문항 초안을 작성하게 하고 그걸 다시 고치느라 고군분투 할 때 학원 원장은 퉁퉁한 다리를 벅벅 긁어대며 핸드폰을 가지고 놀던 그 시기!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솓는 그 시즌이 바로 이번 주이다. 월요일부터 시작된 수시 접수에서는 모든 공통 문항 3개와 개별문항 1개를 작성해 입력해야 한다.


자소서를 한 번이라도 써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정확한 포인트를 잡아 정해진 글자수에 맞춰 나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힘들다. 자소서를 102번도 더 고치고 고쳐서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질때즈음, 1차 결과가 나오면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혼을 내고 때론 달래가며 면접을 준비한다.


이렇게 힘든 수시 준비. 도대체 비용은 얼마일까?

학원마다 다르고 실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진짜 유명한 선생님에 경우 명품백을 살 정도라고 하니 부담스러운 비용임은 분명하다. (에르메스 정도에 가격은 아니고 샤넬 정도의 가격!)


이런 큰 비용을 들여서 하는 게 효과가 있는걸까? 솔직히 말해 내신성적이 안 된다면 아무리 최고의 선생님이 자소서를 써주셔도 소용이 없다. 1차에서 이미 광탈일테니. 학교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는 각 전형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4가지 항목으로 점수를 매긴다. 전공적합성, 자기주도성, 학업역량, 발전가능성이라는 4가지를 보는데 생명공학과 진학한다는 녀석이 생명과학 성적이 4, 5등급이라면 학업역량에 점수를 받기 힘들다는 얘기이다.


결국 좋은 자소서를 만드는 것은 고1부터 시작인거고 3학년 때 비싼 자소서 첨삭을 받고 면접을 준비해도 벼락치기로 준비한 녀석은 티가 난다. 깊이감 없는 대답과 외워서 말하는 기계적 말투에 어떤 진정성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자소서를 쓴다시고 자기 집에서 합숙을 시키고 다른 공부는 못하게 하는 실력없는 사기꾼에게 놀아나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고3 엄마가 되면 객관적인 시야가 사라지는건지 왜 저 사기가 안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 큰돈을 왜 덥썩 주는건지 답답하고 안타깝다.


제발 눈 좀 크게 뜨고 학원에서 뭘 해줄 수 있는지 파악하고 돈을 쓰시길. 학원가에 발 붙이고 있는 선생에 간절한 부탁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