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쓸모없는 사람이 된 날

by anchovy

쓸 만한 가치가 없다. - '쓸모없다'라는 말의 사전적 뜻.


오늘, 중학교 1학년 아이의 수업을 하다가 이 학생의 어머니에게 나라는 존재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의 달을 준비하며 정규 수업 이외에 과학탐구토론에 관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툭 던지는 이 꼬맹이의 말.


엄마가 기말은 혼자 하래요. 국어, 사회, 과학 혼자 못하면 이상한 거고 꾸준히 할 필요는 없데요.


'꾸준히 할 필요가 없어? 왜? 이게 뭔 소리야? '


싶었지만 그냥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괜히 흥분한 말투로 화를 내는 건 너무 좀스러워 보일 것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건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따위 가식은 개나 줘 버리라고. 이 수업을 마치고 나오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 찝찝하고 개운하지 않은 기분이 사라지질 않는다. 왜 나를 믿지 않는 걸까?


이 어머니는 애초부터 나에 대한 믿음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과학 과목에 사교육을 처음 시작하는 어머님이라 좀 조심스러우신 건가 싶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해진 느낌은 과학은 잠깐, 방학 때나 배우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거였다.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교내 대회 한 번 나가지 않고, 반장 선거에 나가보지도 않은 아이인지라 그런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한 나를 수업이나 더 해서 돈이나 뜯어내려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이었다.


내가 괜히 자격지심에 의한 오해라고도 생각했지만 이 어머님의 전화를 통해 더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분께 어떤 믿음도 주지 못했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선생이라는 씁쓸함... 매 번 똑같은 패턴의 후회. 또 기대를 해 버렸던 거다. 내 얘기에 믿음을 가지고 나를 따라와 줄 것이라는 기대는 무참히 깨지고 그저 돈이나 밝히는 선생이 되다니 선생으로서 나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그리고 괜한 기대로 실망하고 있는 나 스스로가 한심하고 선생을 믿지 못하는 이 어머님은 안타깝다.


불타는 금요일.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자만하지 말자. 넌 언제든 까일 수 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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