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chovy Aug 12. 2019

72. 스치듯 안녕


며칠 전, 늦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뷔페를 가게 됐다. 가격대도 합리적이고 메뉴도 무난한 이유에서인지 많은 분들이 뷔페식당 안을 가득 채우고 계셨다. 바로 들어갈 수는 없는 시스템인지라 입구에서 좌석 안내를 기다리고 있는데 왠지 낯익은 실루엣이 보이는 게 아닌가?


동진 어머니?


여기서 언급하는 이름은 물론 실명이 아니다. 그 어머님이나 학생이 원치 않을 수 있으니 가명을 쓰려고 한다. 여하튼! 슬쩍 봤음에도 그 어머님인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어머님 주변을 살펴보니 키가 훌쩍 큰 남자아이가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있었다. 동진이. 2년 만에 보는 얼굴이라 반가웠다. 하지만 영재고 불합격 후 상심이 컸던 학생인지라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않고 수업을 그만두었기에 내 쪽에서 먼저 인사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또 나나 저 학생이나 같이 식사를 하는 무리가 있으니 그 자리에서 아는 체 하는 게 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반 가량 식사를 하면서 언제쯤 나를 알아봐 줄까 기대하고 슬쩍슬쩍 학생과 어머님이 앉아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예 내 쪽으로는 등만 보이게 몸을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끝까지 인사나 안부도 묻지 못하고 그냥 식당을 나왔다.


뭐 이게 대단한 일일까 싶겠지만 참... 속상했다. 예뻐했던 학생이고 좋아했던 어머님께서 나를 모른 척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물론 그쪽은 나를 못 봤을 수도 있다. 먼저 인사를 건네지 못한 내 소심함이 문제일 수도. 하지만 내 느낌에는 분명 나를 알아봤는데도 나를 일부러 피한다는 건 내가 저들에게 어떤 인간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스스로 썩 괜찮은 인간이라 자부했는데 어쩌면 누군가에게 나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는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에 대한 자만이 깨진 것 같다. 누구나 나를 좋은 기억으로 추억할 거란, 언제든 반가워할 것이라는 자만. 오늘도 나는 이 한 가지를 알아가는 중!

매거진의 이전글 71. 1학기 기말고사 후, 고3은 학원을 그만둡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