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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Aug 13. 2019

73. 원장 장모님 칠순에 참석해야 할까요?

예전에 평강사 시절에 있었던 일인데 출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장의 장모님이 칠순이라는 얘기를 하는 팀장 선생님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심히 넘기려는데 모두 3만 원씩 돈을 걷자는 얘기를 꺼내는 거다.


원장 장모 칠순에도 저희가 참석해야 하나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주변 분위기를 보면서 일단은 입을 다물었다. 난 소심하니까. ㅎ 입을 다물고 있었던 소심한 나와는 달리 개혁파(?) 선생님들께서는 용감하게도 곧바로 항의의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면 우리 엄마 아빠 환갑에도 돈을 걷어 주시는 건가요?


와! 진짜 멋지다. 어쩌면 저렇게 적절한 말을 꺼내는지? 이 말을 꺼낸 분이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역시 문과의 말빨은 따라갈 수가 없는 듯했다. ㅎ 여하튼 이 말이 나오니 다들 수근수근거리며 돈을 걷는 게 옳지 않다는, 원장 장모님 칠순 잔치에 선생님들이 가는 게 필요치 않다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팀장은 좋은 게 좋은 거다, 3만 원씩 내고 뷔페도 먹고 자리 채워주면 원장이 얼마나 체면이 서겠냐며 계속 돈을 걷자고 했다.


돈도 아깝지만 왜 내가, 휴일에 남의 잔치에 가야 하는 걸까? 도저히 이해도 납득도 되지 않았다. 원장한테 잘 보이고 싶으면 팀장 저 혼자나 갈 것이지 왜 가만히 있는 우리까지 끌어들이려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1만 원, 참석하는 사람은 3만 원 씩을 내게 되었다. 원장은 보란 듯이 참석하지 않는 선생들에게는 답례품도 주지 않았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회식을 할 때면 불참한 선생들에게 참 바쁘게 사는 것 같다고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살라며 충고를 하기도 했지.


아니 지 장모 생일에 안 가면 마음에 여유가 없는 건가? 진짜 어이가 없었다. 차라리 장례식장이면 갔을 것이다. 원래 슬픈 일에는 위로가 필요하니 많이들 가는 게 든든하겠지. 하지만 이런 개인의 즐거운 행사 때문에 휴일을 낭비하게 하고 강제적으로 돈까지 내게 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엄마, 아빠 칠순 잔치하면 나도 원장한테 돈 좀 달라고 하면 이 억울함 풀리려나? ㅎ 그냥 우스운 상상을 해본다. 원장님? 돈 많이 모으셨어요? 팀장님? 학원에 뼈를 묻으셨나요?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삽시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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