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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Sep 20. 2019

77. 내로남불·사필귀정. 우리 애는 특혜가 아니라고!

한 정치인의 아들이 고교생 신분일 때 서울대 의대 연구 포스터의 첫 번째 저자로 이름이 오른 사실로 인해 세상이 시끄럽다. 얼마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을 신랄하게 비판하셨던 분인지라 내로남불, 사필귀정이라는 비아냥 섞인 반응이 주를 이루는 듯하다.


나도 대학원 시절, 서울대 대학원 연구실에 측정기구를 대여해서 사용해 본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어떤 경로로 사용 신청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서울대 실험실은 아무나 신청한다고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치더라도 서울대 의대 연구실을 고등학생이 빌려서 연구를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특혜임은 분명하다. 그 정도로 무슨 난리가 난 것처럼 그러냐며 오히려 불쾌함을 드러내던 그 정치인을 보며 혹시 문과 출신이라 정말 몰라서 저러는 건가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진짜 무지한 건가, 하지만 절대 몰랐을 리가 없다.


그리고 포스터의 저자는 맞지만 논문을 쓴 건 아니라는 논리의 허점에 대해 한 번 썰을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은 학술지를 발행하는 기관의 정해진 기준을 통해 승인 심사를 받아야 한다. 반면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포스터는 특별히 까다로운 절차나 심사 없이 연구를 선보일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단 저자 표시에 있어서는 연구자의 기여도에 따라 원칙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물론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포스터 내용은 논문에 실릴 만큼 완성된 연구성과가 아니어도, 갓 시작한 연구 수준이라도 가능하고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일부를 요약해서 포스터로 발표하기도 하지만 이는 포스터에 담긴 연구 내용이 질이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제1 저자라 함은 포스터이건 논문이건 그 연구에 기여도가 제일 높다는 것인데 모 정치인의 아들은 10대의 나이에 공학 분야 최대 학술대회인 '국제 의용 생체공학 학술대회'(EMBC)에서 '광용 적맥파와 심 탄도를 이용한 심박출량 측정 타당성에 대한 연구'라는 포스터에 제1 저자로 참가했다. 서울대 대학원생 3명을 제쳐두고 주저자가 될 만큼 뛰어났다는 얘기다. ^^


나 같은 평범한 머리를 지닌 사람은 감히 꿈꾸지도 못할 능력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고등학생이 여름 방학 기간이라 짧은 시간 동안 함축적인 연구를 통해 제1 저자라는 업적을 내다니. 나는 그 나이에 컵 떡볶이나 먹는 철딱서니 없는 청소년이었는데,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이 포스터의 교신 저자인 윤ㅇㅇ교수는


 “그걸 가지고 엑스포(경진대회)인가 뭔가 나간다고 했었다. 어차피 그게 고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본인이 알고선 그걸 한 건 아닌 건 확실하다. 그렇지만 저희가 아이디어를 주고 연구를 진행했다.”


결국 입시를 위한, 스펙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 이 포스터가 제작된 것이다. 교수에게 아이디어를 얻고 서울대 대학원생들과 여름방학 기간 동안 실적을 만든 것. 스펙 없이는 쉽게 대학을 갈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을 알려주는 반증이다. 물론 이 스펙만으로 미국 명문대에 진학했을 리는 없다. 우수한 GPA와 SAT 성적이 있을 것이고 오랜 노력 없이 부모의 입김만으로 미국 대학에 입학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부 입학도 쉬운 게 아니라는 것, 억만금을 줘도 기본 이상이 아니면 절대 안 받아주는 게 미국 아이비다. 제발 그런 건 좀 알고 까자.)


특혜가 아니라는 잘못된 변명은 하지 말았으면 그 이후 원정출산이니 뭐니 하는 얘기들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어차피 진실은 밝혀지겠지. 그때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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