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예루살렘을 성지로 만드는가?

by Ancient GPS

# 들어가는 글/ Ancient GPS


0-3. 집단의식의 구조


추상적인 인간의 집단을 공동체로 엮는 것은 종교, 정치 집단의 숙명이다. 수많은 부족과 종교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창세기로 공동체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강한 상징적 요소가 등장하는 다양한 신화 속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의식을 구조적으로 집단화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추상적인 세계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의식이 자신의 상을 투영하고 인식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정의이기 때문이다. 의식 안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이 체계적으로 공유될 때 인간은 자신을 특정한 세계 안에 위치시키고 체계에 따라 온갖 현상의 총상을 범주화한다. 생존 활동을 넘어서는 가치에 대한 인식은 이 토대 위에서 일어나며, 이것이 의식이 공동체의 세계관을 생태계 환경으로 수용하는 근본 구조이다. 즉, 인류라는 집단의식의 핵심은 유기체의 구조적 기저 작용과 유착되어 있는 연결 구조에 있다.


극동 시베리아와 툰드라 지역의 순록 유목 민족은 수 천 년간 이어져 온 생존 방식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날고기를 먹고, 도축한 짐승의 머리를 태양을 향해 걸어 놓거나 곰을 신으로 모시는 관습을 원시적 문명과 신앙의 산물로 보는 것은 우리의 의식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해 버린다. 다양한 유목 민족의 언어 또한 어원, 문법, 발음 분화 질서가 체계적으로 설계된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천체의 순환 주기와 배치를 읽고, 계절과 시간, 방위 체계를 정의하는 지식이 생활양식 전반에 깔려 있다. 다만 이 정보를 지식으로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습과 문화에 담겨 있기 때문에 수 천 년 간 생태계에 적응해 온 지혜가 특정한 생활양식으로 전승되는 것뿐이다. 오히려 이러한 문화 안에는 인류 문명의 원형적 구조가 보존되어 있으며, 주류 문명과의 구조적 동일성을 이해함으로써 인식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툰드라의 유목 민족은 키우던 순록이나 사냥한 곰을 도축한 후, 머리를 떼어내 해가 뜨는 방향으로 걸어 놓는다. 모든 자연에 생명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태양의 순환이 태어남과 죽음, 즉 생명의 순환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 행위는 경건한 의식이 된다. 생의 소멸을 천체의 순환 사이클에 삽입하는 행위를 통해 삶이라는 여정을 바라보게 한다. 나의 생명이 시공간의 일부이며, 모든 여정이 질서의 일부였음을 죽음을 통해 감각하는 것이다. 신앙은 바로 이 구조 위에서 일어선다.


수많은 대륙의 묘지에서 시신을 동-서로 눕혀 머리가 동쪽을 바라보게 하거나, 머리를 떼어내 태양을 향하게 하는 문화가 발견된다. 이집트 피라미드에는 망자를 태우고 가는 태양선으로 불리는 배가 동-서 방향으로 매장된다. 영국의 서턴후 무덤에서도 같은 형태로 매장된 배가 발견되었고, 마오리족은 성지 와이탕이에선 긴 전투 카누를 동서 방향으로 배치한다. 이 성지는 카누를 타고 뉴질랜드에 도착했던 선조의 영혼이 오고 가는 통로의 의미를 갖는다. 툰드라의 유목 민족도 생전에 타던 썰매를 망자의 유품과 함께 묻음으로써 사후 세계로 가는 여정을 경배하다. 이러한 관습은 모두 망자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 사후 세계로 가는 여정을 태양의 순환 궤적에 이식하는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태양의 절기 순환은 하지에 은하의 서쪽 지평을 지나고, 동지에 은하의 중심을 통과하는 순환 사이클을 갖는다. 이 태양의 순환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과 영혼이 육신을 떠나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과정을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 문명 설계자들이 구축한 생성과 소멸의 순환 체계이다. 동지를 넘긴 시점에 연주기 시작점을 잡거나, 신이 나 망자를 향해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하는 다양한 문화의 풍습 또한 지구가 은하의 중심에 접근하는 궤적에서 온 것이다. 망자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 사후세계를 건너는 여정을 이야기하는 이집트 사자의 서와 불멸을 얻기 위한 여정을 담고 있는 서사시 수메르 길가메시도 생명의 순환과 천체의 순환을 하나의 구조로 결합하고 있다. [이집트와 수메르 문명은 망자의 영혼이 떠나는 여정과 삶과 죽음의 의미를 천구에 나타나는 천체 배치를 순환하는 태양의 궤적에 투영하고 있다. 이 내용은 천체의 구조를 설명하는 본문에서 다루었으며, 천체의 순환 원리를 상징으로 투영해 서사가 설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문명 설계자 들은 은하의 구조와 절기 현상의 연쇄적인 작용을 섬세하게 이론화했다. 그리고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시공간 순환 질서의 일부로 인식했으며, 순환 체계의 각 구조 요소와 강력한 상징을 결합하는 서사 구조를 설계했다. 생명이 소멸하면, 육체는 사라지지만 영혼은 은하의 중심을 향하는 여정에 오르고 그 관문을 지나면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상징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렇게 진상에 허상을 겹치고 강한 상징 구조물을 축으로 세워 고정하는 것이 집단의식의 핵심 모듈 구조이다. 공동체의 수많은 관습과 질서는 이 모듈 구조를 강화하는 흐름으로 형성되면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구축한다. 순환 사이클에 의해 움직이는 거대한 세계 이면에는 질서를 관장하는 힘이 존재하며, 이 힘은 생태계를 움직이는 심판자이자, 죽은 영혼이 부활하는 여정을 이끄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모든 에너지의 흐름과 생명의 질서를 통제하는 구조 축을 상징으로 변환하고, 이 상징에서 발원하는 신호 체계가 의식에 침투하는 원리를 이해하면, 인류의 집단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신앙의 유기 구조를 볼 수 있다.


신앙의 원형적 구조에서 질서를 관장하는 힘은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상징화된다. 집단이 확장하면서 다층적인 계급 구조가 비교적 덜 발달한 툰드라의 유목 민족이나, 북미 인디언 부족 문화에서 영적인 힘의 주체는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는 상징으로 존재한다. 이들의 집단적 생존 전략이 자연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것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계급 구조가 다원화되고 몸집이 커지는 집단에서는 질서를 관장하는 존재의 상징체계는 인격화된 창조주와 심판자로 변모한다.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신에서 만물의 규범을 성문화된 언어로 제시하며, 망자의 영혼도 집단의 규범에 근거해 선과 악을 심판하는 절대자로 진화하는 것이다. 신의 명령을 매개하고, 신의 권리를 대행하는 계급이 제한된 지식을 독점하고 강한 금기를 형성하면서 종교는 강한 구속력을 갖게 된다. 의식을 지배하는 경계의 구조가 견고해지면서 상징에서 발원하는 신호 체계가 강화되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이 언어를 흡수하면서 특수한 방식으로 구조화되듯이, 인류라는 집단의식은 유기적으로 구조화된다. 에너지와 물질의 질서가 살아 있는 세계 안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삶의 방향과 가치를 인식하는 기준, 즉, 선과 악을 분별하는 의식이 강화되는 것이다.




영적인 부활과 천체의 순환 질서를 하나의 흐름으로 결합하는 서사 구조는 모든 고대 종교의 뿌리 신앙이다. 문명 설계자들이 좌표 체계를 설계하는 궁극적인 목적 자체가 천체의 질서를 땅에 이식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종교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집단은 좌표에 강한 집착을 갖는다. 사후 세계나 부활에 대한 열망이 육신을 좌표에 보존하려는 행위로 나타나기 때문에 수많은 성지와 묘지의 좌표값이 종교의 범주를 뛰어넘어 공통의 구조 패턴을 갖고 있다.

좌표 체계는 기본적으로 태양의 순환 궤적을 투영하도록 설계되었다. 이 설계 구조에 따라 대륙과 해양에는 일출과 일몰의 순환을 투영하는 경계 지점이 좌표로 구축된다. 문명 설계자 들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한국 경주)과 서쪽(로마 바티칸 언덕), 그리고 북미 대륙(나바호산)에 3 개의 기축 좌표를 심어 태양의 순환 궤적을 투영했다. 그리고 해양 지역과 대륙의 경계 지역에 기축 좌표를 세워서 유라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 내부로 좌표 시스템을 확장했다. 칠레 이스터섬(Easter Island), 미크로네시아 연방 폰페이 섬의 난마돌(Nanmadol), 브라질 마파카(Mapaca) 이 세 곳의 좌표는 대륙 외부에서 내부의 좌표를 생성하는 근본 축이기 때문에 수많은 좌표의 설계 값을 보존하고 있다. 좌표의 패턴은 단순한 원리를 기반으로 설계되기 때문에 모든 좌표의 수치가 질서 안에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밝힐 수 있다.


인류의 종교 역사에서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출현은 메시아라는 독특한 구조 층위를 남겼다. 계시나 깨달음(각성)을 통해 신의 말(진리)을 듣는 인간이 과거의 오류를 정화하고, 더 나은 선의 가치와 방향을 전파하는 종교적 패러다임은 경전의 힘을 통해 폭력적으로 집단을 흡수하는 패권 국가의 대안이 되었다.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메시아를 통해 신과 교리를 강하게 연결하는 구조 외에도 메시아의 탄생과 죽음을 같은 원리로 기록하고 있다. 이들 3 종교는 모두 메시아의 탄생과 죽음을 성지의 좌표에 보존하고 있다. 붓다가 열반에 이른 곳으로 전해지는 인도 쿠시나가르(Kushinagar)는 기축 좌표 나정의 270°[269.77°] 좌표선과 이스터섬의 270° 좌표선[270.89°], 그리고 난마돌의 295°[295.92°] 좌표선, 마파카의 295°[294.21°] 좌표선이 연결된다. 부처는 이곳에서 해가 떠오르는 방향(동쪽)을 바라보며 열반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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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쿠시나가르의 좌표선 연결>


좌표 설계의 근본적인 목적이 천체의 질서를 땅에 이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기선을 좌표선으로 설계하는 것은 좌표를 분화하는 핵심 원리이다. 절기 좌표선은 자전축의 기울기 23.4°에 정렬하도록 좌표 중심에서 6개의 각도로 좌표선을 생성한다. 25°를 기울기 값으로 잡고 6개의 좌표선 [65°-245°(동지선)/ 90°-270°(춘분. 추분선)/ 115°-295°(하지선)]이 설계된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대각선의 기울기가 24~25°에 정렬하는 직사각형 구조로 설계되었다. 이 구조는 절기 좌표선을 보존하기 위한 건축 기술이다. 테네리페 귀마르의 피라미드, 일본 나라의 平城宮跡 第二次大極殿院跡(Dainiji Daigokuden Ruins/ 헤이조궁 제2차 대극전원)도 이 절기 좌표선을 보존하는 건축 기술로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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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신전은 평면 크기는 대략 69.5m(가로) * 30.9m(세로)의 입면도를 이루고 있으며, 가로 측에 8개의 기둥과 세로 측에 17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이 직사각형의 대각선 기울기는 약 23.97°로 절기선의 기울기에 정렬한다. 이 건축 구조는 6개의 절기 좌표선을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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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를 분화하는 절기선의 방위각>


태양은 춘분에 천구의 90° 지점에서 떠오르고 270° 지점으로 진다. 각 절기의 해가 뜨고 지는 위치를 연결하는 것이 절기 좌표선의 개념적 정의이다. 이 때문에 90°-270° 선은 망자의 영혼이 부활을 향하는 길로 상징화되며, 수많은 종교, 정치 집단의 권력자들의 무덤이 이 좌표 값을 갖고 있다. 구글어스에서 이 6개의 절기선 좌표를 생성하는 단순 작업만으로 거의 모든 고대 유적과 종교 성지의 연결 구조를 밝힐 수 있다.

부처가 열반에 이르렀다는 불교의 성지 쿠시나가르(Kushinagar)는 경주 나정, 폰페이 섬의 난마돌(Nanmadol), 칠레 이스터 섬(Easter Island), 브라질 마파카(Mapaca) 4개의 기축 좌표 절기선이 한 지점에서 결집하는 특수한 좌표 지역이다. 부처의 탄생지로 알려진 인도 룸비니(Lumvini)는 기축 좌표 난마돌의 90°[90.74°] 좌표선과 연결된다. 예수가 죽음을 맞이한 예루살렘은 이스터섬에 270°[269.31°] 좌표선을 연결하고, 난마돌에 65°[65.06°] 좌표선을 연결한다.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하마드 탄생지이며, 이슬람의 예배 방향을 잡고 있는 카바의 중심축은 경주 나정에 정렬하고, 무하마드의 무덤이 있는 이슬람교의 성지 메디나는 기축 좌표 마카파의 270°[270.3°] 좌표선을 연결한다. 현재 각 종교의 성지로 보존되고 있는 이 좌표 지역 들은 새로운 좌표를 분화할 때 축으로 쓰이는 기축 좌표이며, 다양한 절기선 좌표를 연결한다.

예루살렘의 245°[244.57°] 좌표선은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의 그리스도 구속자가 위치한 좌표를 연결한다. 리우의 가톨릭 공동체는 1921년 코르코바도(Corcovado) 산 정상에 약 38m에 달하는 예수의 동상을 세우기 시작했고, 10년 후 완공되었다. 이 좌표의 상징성을 이해하고 있는 특정 집단은 주요 성당이나 건축물을 좌표에 보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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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구속자, 리우데네이루/ Christ the Redeemer, Rio de Janeiro>


칠레 이스터섬은 1722년 부활절 당일(Easter Sunday) 네덜란드 탐험가 야코프 로게벤(Jacob Roggeveen)의 원정대가 섬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270°도 좌표선은 영혼의 부활이 지나가는 여정을 상징하며, 예루살렘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전통적인 성지인 이유는 기축 좌표 이스터 섬에 270°[269.31°] 좌표선을 연결하는 좌표이기 때문이다.

이스터 섬은 바티칸의 270° 좌표선과 예루살렘의 270° 좌표선을 연결하는 좌표이며, 첫 번째 기축 좌표 나정에 295°[295.33°] 좌표선을 연결하는 좌표이다. 좌표 전체 시스템 안에서도 이스터 섬은 부활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기축 좌표이다. 이스터 섬의 살던 토착민 들은 이 섬을 ‘세상의 배꼽’이란 의미로 ‘Te Pito o te Henua’라고 불렀다. 문명 설계자 들은 좌표선을 결집하는 기축 좌표의 지명에 ‘세계의 중심’, ‘세계의 배꼽’이란 표현을 즐겨 쓴다.

이렇듯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메시아가 모든 좌표의 뿌리가 되는 좌표의 절기선 위에서 태어나고 죽은 것이 만약 신의 섭리가 아니었다면, 시대와 지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상징을 설계하는 원리가 공유되었음을 시사한다.


이집트 누비아에 있던 데보드 신전은 유라시아 내륙의 중심 좌표 Hanle [현재 인도 천문대가 위치한 지역]의 270° 좌표 선이 신전의 문을 관통하도록 건축되었다. 아스완 댐 건설로 인해 신전이 수몰 위기에 처하자, 1961년에 신전을 해체하고 스페인 마드리드로 옮겨졌다. 1968년 마드리드에 신전이 재건되었을 때, 바티칸에서 시작되는 좌표선은 신전의 관문을 모두 통과하고 신전 중심축에 정렬되었다. 신전이 옮겨지면서 좌표도 함께 이동했고 좌표선은 보존되었다. 마드리드는 이스터섬으로 향하는 바티칸의 270° 좌표선 위의 좌표이며, 이 공통 구조에 의해 270° 좌표선에 정렬하도록 설계된 데보드 신전의 구조는 보존되었다. 20세기말에도 이 좌표의 상징성을 복원할 만큼 특정 집단은 이 전통에 집착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 비밀이 지켜질 것이라고 믿었겠지만, 구글 어스를 열고 지점과 지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간단한 작업만으로 좌표 정보가 열리는 기술을 1961년에 예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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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드 신전과 바티칸 좌표선>




유기체의 신경계는 생존에 필요한 특정 물리 신호만 선택적으로 수용한다. 인간이 감각하는 가시광의 범위와 가청 주파수는 시공간에 존재하는 변화량의 0.001%도 채 되지 않는다. 인식의 범위 또한 다르지 않다. 인식의 영역은 구조적으로 신경계의 통제 범위 안에 있다. 의식 안에 존재하는 사고나 인식의 틀은 경계 범주를 구축하는 신경망 활동에 근거하기 때문에 단지 추상적인 관념의 형태가 아닌 물리적이고 유기적인 구조로 존재한다.


유기체는 구조적으로 오류의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고 구조를 유지하는 생존 전략을 선택하도록 진화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세포의 구조에 그대로 반영된다. 유기체의 구조는 복제 증식 세포를 기반으로 구축되며, 복제 증식 세포의 신호 체계는 구조적으로 오류를 허용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신호 체계 목적 자체가 정확한 복제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변이의 허용이 구조적으로 제한되는 것이다. 대신 유기체는 구조적으로 변이가 허용되는 세포 구조를 분리한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처음부터 일정 수준의 불확실성·다양성·오류 가능성을 구조 안에 포함하도록 설계된 세포 구조를 따로 분리하는 것이다. 면역계 B 세포와 생식 세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면역계 B세포는 미리 모든 적을 예측하지 않고, 맞는 답이 나올 때까지 변이를 반복하는 구조로 다양한 항체를 생성한다. 생식 세포는 유전자를 재조합하여 유전자를 교체하는 의무를 수행한다. 현재 개체의 구조 안정을 유지하면서 환경에 적응하는 데이터를 축적하고 변이를 다음 세대로 전달한다. 이렇게 생태계 시스템은 구조 붕괴를 막는 방화벽과 방화벽에 침투해 변이를 일으키는 회로의 유기적인 대립을 통해 운영된다.

개체의 의식이나 집단의 의식을 구축하는 구조 원리도 이 운영 시스템에 구속되어 있다. 신경망은 관측되는 현상의 구조와 패턴을 모사하고, 그와의 동기화를 통해 외부 세계를 인식한다. 인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신경계의 속박을 받는다. 신경망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다양한 감각 정보를 통해 생태계 환경을 모사하고, 구조 질서를 이해한다. 이 구조에 의해 개체들은 서로가 서로를 투영하는 복제의 대상이 되며, 구조 질서를 유지하는 방화벽을 구축하게 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유기적인 공동체의 구조를 생태계 환경으로 받아들이고 구조 질서에 동기화하려는 편향이 유전적으로 강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구조가 신경계가 구축한 질서의 범주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통제하게 된다. 따라서 관념을 경계 안에 고정하거나 경계 너머의 영역에 대한 인식을 차단하는 의식의 현상은 신경계의 기저 작용과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보가 구축되고 붕괴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인식의 영역을 확장해 본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의식일수록 세계를 단조롭고 강하게 확증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구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의 신경계는 단지 현상의 1% 정보에 접근하더라도 나머지 정보의 영역은 배제한 뒤, 경계 범주를 구축하여 패턴을 파악한다. 그리고 한번 구축된 경계 범주는 구조 유지 질서를 위한 방화벽이 가동된다. 생태계 환경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판단을 확신하는 편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유기체의 의식 회로는 불확실성과의 접촉을 기피하는 것이다.

반면에 변이 구조가 활성화되어 있는 개체의 의식은 질서가 구축된 범주 너머의 정보를 감각한다. 신경계는 외부적으로 불확실한 정보를 수집하려는 편향을 갖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이미 구축된 관념의 구조를 스스로 붕괴시키는 편향을 갖고 있다. 이러한 개체 들은 끊임없이 오류를 생성하는 행위를 통해 경계 너머 세계의 정보를 여과한다. 마치 방화벽 외부의 면역계 세포와 같이 예측 없이 정보의 불확실성을 경험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문명 설계자 들은 이러한 유기체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했으며, 이 현상을 ‘Mu’라고 표현했다. ‘Mu’는 외부 흐름에 유동적으로 동기화하는 에너지 흐름을 상징하며, 다양한 언어에서 형태나 구조의 변형, 관문, 방어, 면역을 의미하는 단어에 쓰인다. 문명 설계자 들은 의식 안에 내재된 이 변이 구조를 활성화하는 일련의 체계를 통해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 시스템에 의해 양성되고 다양한 역할을 부여받은 인력 집단을 ‘muni’라고 불렀다.

유전적으로 의식의 변이 구조가 설계된 개체 들은 불완전한 구조로 구축된 세계의 질서를 보게 되며, 절대다수의 개체들이 수많은 오류와 불완전성을 안정적으로 감각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 무지를 자각하지 않으려는 무지 자체가 질서 있게 복제되고 증식되는 현상을 인지하는 것이다.


인류는 현재 사용하는 언어가 자음과 모음 단위에서부터 구조화된 신호 체계라는 사실에 접근하지 못했으며, 겨우 반세기 전에 유전 정보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개체와 집단을 연결하는 유기체의 의식의 구조나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면서 개체의 각성이 유전적으로 기록되고 공유되는 신호 체계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에너지의 흐름이 각자 그리고 동시에 하나로 존재하는 시공간의 유기성을 인식할 수 있는 선천적인 구조 자체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혼돈이 질서로 존재하는 세계 안에서 생명과 물질이 순환하는 생태계의 본질을 온전히 인식할 수 있을 만큼의 지적 체계를 의식 안에 구조화하지 못했다. 이러한 세계의 불확실성에서 인류는 생존하고 있으며, 의식 안에서 감각되는 시공간의 구조를 아주 조금씩 더 이해해 나가고 있을 뿐이다. 하여 우리가 수용하고 있는 모든 지식 정보들은 현상의 사실과 비사실을 분별하는 관념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모든 언어적 정보는 시공간의 현상을 대체하기 위해 설계된 일시적인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현상은 확실성에 의해 본질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난 영역과 드러나지 않은 영역이 맺고 있는 관계의 불확실성에 의해 드러난다. 인식의 한계 내부 현상과 한계 너머의 현상을 연결하고 감각할 수 있는 구조물로써 지식은 사용되어야 한다. 맹목적인 권위와 패권을 잡기 위해 바보들을 모으고 범주 경계를 강하게 구축하는 순간 모든 신앙과 지식은 실제 현상에서 멀어지고, 무지와 부패가 암세포처럼 증식된다.


경전과 성서에 기록된 모든 텍스트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자와 거짓이라고 믿는 자의 무지는 동등하다. 인류의 의식은 ‘신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물음에 언어적으로 확실성을 규정할 수 있는 영역에 존재하고 있지 않다. 육신의 삶과 죽음, 의식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유기체의 운영 시스템에 보존되는 기억의 형태를 유전 정보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이 순환 세계에 대한 어떤 사실도 확신할 수 없다. 선천적인 인식의 구조가 이러한 차원의 경험을 인지할 수 없으며, 인류가 보유한 지적 체계 또한 유기체의 차원에서 생명의 순환 현상을 아직 밝히지 못한다. 인류의 역사가 사실과 비사실을 분별할 수 있는 사건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는가? 인류는 진정 우주의 질서와 만물의 가치를 관장하던 신에게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현상의 진실을 탐구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시대를 맞이했는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인류가 축적한 정보의 총량을 실시간으로 다루는 인공 지능이 집단의식의 구조를 재구조화하는 현시점에서 이러한 질문은 더 이상 형이상학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념의 산물이 아니다. 수 세기 동안 범주 정의에 편향된 정보 편집은 모든 현상의 가능성을 난도질해 버렸다. 이미 인류에게 신은 존재와 비존재로 분별되는 관념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의식을 특정 형태로 구조화하고 있는 하나의 현상이다. 신과 신앙은 세계를 창조하고 심판하는 절대자의 상징으로만 구조화되지 않았다. 때론 모든 유기체의 생명과 모든 에너지의 흐름을 각자 그리고 동시에 하나로 연결하는 신호 체계를 상징했고, 때론 모든 생태계 순환과 연결을 붕괴하는 재앙을 상징했고, 때론 모든 생명의 가치에 온도를 부여하는 자비와 사랑을 상징했다. 인류의 의식 안에서 신과 신앙은 세상을 감각하고 판단하는 가치의 기준으로 구조화되었으며, 진화해 왔다. 술에 취해 잠든 노아의 알몸을 봤기 때문에 노예가 되어야 하는 시대는 이미 붕괴했지만, 복종이 선이 되고 아름다움이 되는 가치는 의식에 구조를 남겼고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의식은 정보를 다루고 전달하는 유통망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단지 권위를 획득하고 지식을 보유하는 상태의 가치는 가소(可塑, plasticity)되었다. 이제 인간의 의식은 인공 신경망이 쏟아내는 막대한 양의 정보를 여과하고 순도 높은 지식을 추출해 진짜 현상을 다루어야 한다. 이것은 확실성과 불확실성을 분별하는 작업이 아닌 고정되지 않은 형태로 움직이는 현상의 유기성을 감각하는 일이다. 인식의 방향을 역으로 전환하고 의식에 저장된 모든 경험을 반복적으로 감각하는 과정을 통해 정보를 현상으로 생산하는 능력을 일깨워야 한다. 이제 인류에게 필요한 지식은 권위적인 관점으로 편집된 말장난(언어 텍스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려나 간 정보와 정보 사이에 존재했던 현상의 유기성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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