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일반화의 오류이겠지만, 내 주변의 아이 둘을 가진 아빠들을 보면 대체로 첫째와의 유대가 더 강한 편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첫 정이라는 애틋함은 차치하더라도, 아빠와 첫째가 더 가까운 이유는 아마 둘째가 '엄마'를 조금 더 많이 독차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첫째는 엄마로부터 격리가 된다. 세상 온순하다고 소문난 첫째가 막 산부인과에서 온 둘째의 얼굴을 할퀴었던 날 이후 배우자와 나는 둘을 자연스럽게 떨어뜨리는 데 집중하였고, 결국 첫째의 주의를 끌기 위해 내가 더 놀아주고, 내가 더 함께 다니고, 내가 함께 잠을 청했다.
그 아이들이 이제 여덟 살과 다섯 살이 되었고 십 분에 한 번씩 싸우긴 하지만 지금이야 누구보다 친구처럼 잘 어울려 놀고 있다. 특히나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요즘, 외출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알아서' 둘이 잘 놀아주니 고맙기도 하다.
첫째와 나는 둘이서만 수족관 구경도 가고, 63 빌딩 전망대도 함께 올랐으며, 놀이동산과 동물원을 함께 가기도 했다. 그리고 둘이서만 2박 3일로 일본 여행도 다녀왔다. (여행은 불매 운동 전이었다.)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온지라, 아빠와 어린 아들만 오니 초반에는 주위 분들이 나를 '싱글 대디'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긴 해외여행을 엄마 없이 잘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반면 둘째와 나는 둘이서만 어디를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엄마 아니면 외할머니의 품에서 자랐고 그렇게 그들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고맙게도 둘째가 태어나고 내가 휴직하기까지, 오랜 시간 장모님은 우리 아이를 봐주시기 위해 주말부부 생활을 하셨다. 나의 짧은 휴직이 끝나면 다시 시작하시겠지만.) 그리고 나는 첫째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코로나 19 때문에 유치원도 보내지 못하니, 둘째와 나는 매일 24시간을 온전히 일주일 넘게 함께하고 있다. 형한테 맞았다고 칭얼거리는 것도, 배가 고프다고 간식을 달라는 것도 부탁할 사람은 '아빠'가 되어버린 것이다. 평소 같으면 아빠가 아닌 엄마 또는 할머니가 해달라고 떼를 써야 하는데, 퇴근 후 저녁 시간이 아니고서야 엄마를 마주할 수 없으니 말이다.
"아빠 햄."
배가 고프다는 말부터, 예전엔 엄마나 할머니가 없으면 과자나 빵 같은 건 스스로 가져다 먹었지만 이젠
"아빠, 초코과자 줘."라고 말한다.
물론 훈육의 관점에서야 퇴행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만큼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니 한 동안 열심히 집사처럼 움직여줄 참이다. 둘째와 나 사이의 거리감이 크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이 아이의 이런 소소한 말과 행동의 변화를 보다 보니 그동안 우리 둘 사이에 '간격'이 있었고 그래서 육아 휴직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싸우자.
가장 큰 변화는, 여느 사내아이들이 그렇듯, 내가 침대에 누워 티브이라도 보려고 누워있으면 슬쩍 옆으로 와 주먹으로 나를 한 대 친다. 그리고는 결투를 신청한다. 권투이기도 하고, 칼싸움이기도 하고, 총이기도 하다. 물론 장난감을 내 앞에 던지고서는 '놀자'라고 하는 건 비일비재하다. 책을 가져와 무릎에 앉고선 읽어달라고도 한다. 전에 없었던 일은 아니다. 다만 더 자주, 더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우리 집 풍경인 것이다.
집안마다 다 환경이 다르고, 각자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지만 첫째 또는 둘째를 주중에는 외가에 맡기고 주말에만 데려와 함께하는 가정이 있다. 맞벌이 상태에서 두 아이를 모두 케어하기 어렵다는 이유이다. 물론 전문가도 아니고, 그 만의 사정도 모르지만 '미세한 마음의 거리'가 생기지 않을까 조금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역시 아이는 부모 품에서 키워야 한다는, 이건 꼰대 같은 생각일 수 없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나로서는 휴직 후 딱히 아이들에게 신경 쓰며 한 행동은 없다. 예전과 다름없이 행동하고 있다. (아님 사회생활의 짐을 일시적으로 덜어낸 내가, 나도 모르게 '선'한 아우라를 뿜어내어 아이들을 편하게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전문가들은 하루에 십분, 이십 분이라도 집중적으로 놀아주고 유대를 쌓아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맞벌이 가정에는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난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아이와 나, 단 둘만이 있는 시간을 가능하면 오래 가져보라고 말하고 싶다.
특별히 구현동화를 잘하거나, 성대모사를 잘하거나 뭔가 아이를 까르르 웃게 할 필살기가 없는 나 같은 아빠라면 말이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서로의 존재를, 특히 아이가 나의 존재를 많이 의식할수록 유대와 애착은 점점 강해지는 것 같다. 재미 없는 혹은 재주 없는 아빠라면, 아이가 오롯이 나만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겨우 일주일의 경험으로 한 말이 아니냐겠지만, 나름 첫째와도 이렇게 유대를 쌓아왔으니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종이 접기와 딱지치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첫째, 육탄전과 자동차를 좋아하는 둘째와 다 같이 놀아주다 보면 내가 아빠인 것이 행복하고, 이 아이들의 아빠여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녀석들이 정말 정말 꼴 보기 싫게 행동할 때면 이 말을 취소하고 싶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