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성에 대하여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

by 제성훈

주말을 맞아 배우자에게 홀가분하게 아이를 맡기고 한 시간여 동네 성북천을 따라 산책을 했다. 아이들과 24시간 함께 지내다 보니 답답증도 있지만 무엇보다 운동 부족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분 좋게 산책을 하고 프랜차이즈 커피숖에서 시절을 좀 더 앞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시간이 일러서였는지, 요새 코로나 19 때문에 손님이 없어 감원을 한 것인지 테이블이 20개나 되는 그곳에 직원은 한 명뿐이었다.


나는 세 번째 주문 손님이었고 (커피가 나오지 않은 기준으로 말이다.) 두 잔을 주문한 내 앞 손님을 기준으로 하면 네 번째 잔이었다. 혼자 모든 걸 처리하는 상황이었기에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조금 지나다 보니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이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왜 저런 서툰 알바 혼자 가게를 책임지도록 하는 거지?'로 바뀌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지금 시간과, 내가 주문한 시간 (신용카드 사용 알림이 온 시간)의 차이를 측정한다. 11분이다. 그리고 커피가 나왔다.


그 조바심은 커피가 엄청나게 마시고 싶은 욕구와 바이러스를 피해야 하기에 이 가게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카페인 따위에 굴복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공공장소에 있어야 하는 자괴감과 한적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주문하는데 바이러스를 생각해야 하는 나의 지나친 예민함이 뒤섞인 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바이러스가 없는 세상이라면 달리 행동했을까?


갑질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참았던 말을 꾹꾹 눌러 담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받아 들었지만, 결국 돌아 나오며 '커피 한잔 만드는데 짜증 날 정도로 오래 걸리네.'라는 알바생과 허공도 아닌 상대도 없는 말을 들릴 듯 말 듯 뱉고 나왔다.


나에겐 기다림의 시간은 딱 10분인 것 같다. 짜증이나 조급함이 올라오거나, 가슴이 답답해지면 어김없이 '약속한' 혹은 '내 생각에 되어 있어야 하는 시간'에서 딱 10분이 지나있다. 사람마다 그 포인트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대체로 내게 그 기다림의 시간은 10분이다.


남들도 나와 같은지, 10분이라는 시간이 가진 심리학이나 인지학적 배경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 자릿수와 두 자릿수의 무게감이 다르듯 9분과 10분의 차이가 일 분 이상의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님 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10분이라는 '쉬는 시간'에 익숙해져, 10분을 빼앗기면 온전한 내 시간을 빼앗겼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뭐 이런저런 이야기는 각론 하고, 나는 여느 육아서나 교육 전문가의 말처럼 아이에게 스스로 계획을 짜게 하고, 그 시간을 엄수하도록 노력을 한다. 약속한 공부 시간의 10분 전이다. 약속한 시간의 5분 전이다. 이제는 오늘 약속한 시간이니 공부를 해야 한다, 끝없이 리마인드를 시키지만 아이는 당연히 말을 듣지 않는다. 물론 아이가 직접 세웠다고는 하나 공부란 걸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계획표 상의 시간보다 10분이 지나버리면 아이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하거나, '약속을 지키는 착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실망이다'라는 등 협박까지 일삼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엄마 아빠들이 경험하듯 이런 정신적 소모전은 결국 싱겁게 끝나고 만다. 왜냐하면 (물론 이런 잔소리의 누적된 효과일 수도 있지만) 아이는 하려고 한 일을 어쨌든 하기 때문이다.

내가 화를 내던 아니던 좀 시간이 늦더라고 아이는 약속한 일은 하고 만다.


결과론적 사고방식으로, 뭐든 '결과가 좋으면 좋은 거'라는 의미로 자녀를 양육하자는 뜻은 아니다.

처음 이 글을 쓸 때에는 아이는 어쨌든 일을 해내기 때문에 부모로서 조급하고, 부모로서 자신의 페이스대로 가기보다는 아이를 믿어보자는 말을 하려 했었다. 한 과목의 진도가 아니라 인성을 키우겠다는 교육 방침을 세운 나 자신에 대한 마음 다잡기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부모로서 무엇을 참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 자문해 보았다.


누구나 알고, 누구나 상투적으로 하지만, 누구나 실천은 못하는 것, 그 말을 다시 하려고 한다.


오늘 주말 아침, 아이들이 아직 잠을 청하는 아침 시간 동안 산문집 한 권을 읽는 여유도 부렸다.

김연수 작가의 '지지 않는다는 말'. 책이 나온지는 좀 되었지만 이제야 읽게 되었다. 제목만 보면 뭔가 대단한 인생 결기를 다룬 글 같겠지만 그냥 생활 속에서 느끼는 다양한 인상들을 적은 것이다.


"어른들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일 위주로 생활하면 인생에서 후회할 일은 별로 없다."

처음에는 문장을 잘못 읽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통념의 문맥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내용인즉은 이렇다. 나이 마흔에 회사 동료와 당구장에 가면, 20대 대학시절에 친구들과 즐겼던 당구의 느낌이 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은 당구 치는 일은 아무 때고 할 수 있다지만 그때(대학시절)가 아니면 그 맛을 알 수 없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늙을수록 시간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해야만 한다."

그의 말이다. 여기에 나의 말을 더한다면, 아이들은 모든 일에 서툴 수밖에 없다. 우리는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능숙함'이 몸에 배어나도록 반복에 반복을 더하고 이를 위해 (절대적 시간의 한계가 있으니) 선택과 집중을 한다. 즉 어떤 특정한 행동, 결국에는 국, 영, 수 같은 공부로 한정 지어 버린다. 하지만 아이에게 공부의 서툼 정도는 아주 조금만 인정하고 참아줘도 되지 않을까?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다른 것을 해볼 시간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이와의 육아 휴직 기간 동안 같이 여행도 다니면서 이런저런 추억을 쌓고 싶지만 쉽지 않은 시절이다. 그렇다고 꼭 이런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아이와의 추억이 쌓여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냥 블록 장난감 하나를 같이 만드는 것도 아이들에겐 큰 즐거움이고 좋은 추억일 수도 있다.


물론 영어도 해야 하고, 수학도 해야 하고, 논술도 어김없이 싸워가며 시키겠지만 놀이도, 늦잠도, 생떼도 뭐든 많이 하도록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내 아이가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 이를 참아선 안 되겠다.


'마스크 쓰고 공원에라도 함께 나가야겠다. 봄이 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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