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육아 휴직은 한 달을 달려가고 있고, 어줍지 않은 나만의 아빠상 정립과 다짐 세우기보다는 실행에 역점을 두고 있다.
아마 코로나 19가 아니었다면 겪지도 않았을 일이고, 미처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주제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 보니 TV와 유튜브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해 속 태우고 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라는 측은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게 장기전으로 가다 보니 백수 자식이 빈둥대고 밥만 축내는 것처럼 보기 싫을 때가 많아진다.
첫 번째 딜레마 : 뛰거나 영상을 보거나
아들 둘을 키우다 보니, 같이 놀기 시작하면 아무리 목에 핏대 세우고 소리쳐도 뛰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혹여 블록처럼 차분한 놀이를 시작해도 한 십분 쯤 지나면 서로 무너뜨리고, 울고, 발길질하며 싸운다. 결국 TV나 유튜브로 시선을 돌리면 또 그걸 멍하니 보는 것도 속 터질 지경이다. 아빠는 유튜브만큼 재미있는 콘텐츠 Creator가 못된다는 것이 문제. 콘텐츠의 중요성을 마케팅이 아닌 양육에서도 느끼다니.
'미스터 트롯'에 푹 빠지신 장모님이 유튜브로 계속 다시 보기 하신다고, 이제 왜 애들이 유튜브에 빠지는지 알겠다고 공감하시는 바람에 좀 놀라긴 했다. 이건 우리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두 번째 딜레마 : 관계의 특수성
물론 부모가 주도하여 아이에게 교육을 시키면 어떠냐고 말할 것이다. 홈스쿨링이란 걸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절대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통감.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역할과 권위의 위력은 분명히 있는 것이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정말 집에서 아이들에게 교육시키는 부모를 존경하게 되었다.
부모는 가장 앞에서, 가장 친밀하게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물론 교육을 포함하여 어느 하나 빠짐없이 관여하는 존재가 맞다. 또한 가장 강력한 훈육의 집행자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가장 손쉬운 호구이다.
가끔 내 아이의 행동을 보면, 내 위에서 나를 조종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해 공감할 수 있었는데, '아이는 어떤 행동, 말을 하면 부모가 화를 내는지 알고 있고, 그래서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한다'라고 한다. 부모가 한 번 화를 내고 나면, 더 유연 (혹은 수용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얻어낸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못하게 하지만, 결국 떼쓰는 아이에게 보상으로 그것을 허락하고는 만다. (예를 들어, 약속한 대로 장난감 정리와 목욕을 했으니 TV를 한 번 볼 수 있도록 해준다거나 말이다)
세상에 그래서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필요한 것 같다. 교육학적인 전문성이나 지식의 깊이만이 아니라, '엉겨 붙기'가 불가한 심리적 거리감과, (이미 남들은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이 명확하게 선이 그어져 있는 존재가 있어야 정형화된 모듈의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예전 어른들은 엄한 선생을 선호한 게 아닌가 하는, 끔찍한 공감을 하고 마는 것이다.
세 번째 딜레마 : 강한 훈육은 아이의 정신력도 무장시킨다.
반어법이다. 솔직히 나는 아이들에게 친절한 아빠는 아니다.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이나 미숙한 행동에 자주 화를 내고 호통을 치는 편이다. 그런데 이게, 아이들이 웬만한 호통을 이제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솔직히 화를 내도 아무렇지 않다는 건 좋은 징표는 아닌 것 같다. 정말 무던해 한 귀로 흘려버리는 신공을 터득한 것이라면 그것도 나름대로 문제이고, 밖으로 반응하지 않고 속으로 움츠러들면서 아무 일도 아닌 척한다면 그거야 말로 더욱 속상한 일이다. 그래서 이제 더는, 웬만한 (한 세 번 참을 정도로) 일에는 화를 내지 않고 있다.
마지막 딜레마 : 대원칙 vs. 매뉴얼
공중파 TV의 자녀 교육 관련 프로그램을 보니, 전문가 왈, 초등학교 자녀의 가정 내 공부 시간은 (학년) X (0.5시간)이란다. 나 역시 나름 아이 교육을 신경 쓴다고 읽은 <칼 비테의 교육법>에도 처음 교육을 시킬 때는 하루에 20분 정도, 어렵지 않게 흥미를 유발하는 정도로 시작하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절대 많거나 무리한 내용 없이 간단히 흥미 위주의 교육을 시키기로 결심했다.
우리 아이는 이제 일 학년이니, 그럼 하루의 23시간 30분은 무엇을 해야 하나?
- 공부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루 30분 정도만 어렵지 않게 교육시키기 (물론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시키기라는 대원칙으로 양육을 하려 했는데,
지금의 상황은 두 가지 모두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23시간 30분을 위해 이리저리 아이를 끌고 다닐, 발칙한 발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기껏해야 지금은 드라이브 정도)
가장 경계하는 부분은 무력감. 혹시 아이들도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 보면 특별히 움직이고 싶은 욕구도 생겨나지 않고, 또래나 선생님들도 만나지 않으니 뭔가를 배우거나 해야겠다는 자극도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점점 더 늘어지고, 점점 더 수동적인 영상 보기에 매달리는 것 같다. 이젠 하루 30분 공부도 하지 않으려니 말이다.
다음 달 개학을 하기 시작하면 또 상황이 많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대원칙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아직은 나 또한 미숙해서 대책 없이 손 놓는 경향이 있지만, 언제 생길지 모르는 돌발상황을 대비한 매뉴얼도 마련해야겠다. 단순히 TV 리모컨만 감춘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