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의 거리두기

by 제성훈

오늘은 여덟 살 큰 아이에게 호통을 치고 말았다. 식탐이 거의 없는 아이이다 보니, 매 끼 밥을 먹이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물론 지금은 공부시키는 것이 더 어렵긴 하지만.) 식탐이 어느 정도 없냐면, 애써 차려 먹여주지 않으면 점심이나 저녁 한 끼 정도는 건너뛰어도 배고프다 하지 않는다. (물어보면 그제야 '잘 모르겠다'는 답 정도만 돌아온다.)


아침에는 입맛이 없다 하여 아이 엄마가 출근 전 팬케이크를 구워주었고, 그것도 한 조각 정도 먹었으려나, 점심은 대신 영양가 높게 연어 스테이크를 해주었다. 밥 위에 생선을 얹어 먹였더니 '먹기 싫은데 왜 주냐'라고 울면서 짜증을 낸다. '아 놔.'


"이게 짜증을 낼 일이야? 너 먹이려고 내가 신경 써서 만들었는데...

(중략) 이게 아빠한테 할 태도야! 친구한테도 이런 식으로 하지 않겠다."


그래, 우린 친구나 남에게는 그래도 예의를 가지고 행동한다. 러나 가족에게는 그 '최소한'의 기준이 매우 낮다.


밥투정이야 늘 있는 일이기에 색다를 것도 없다. 아마 오늘 아이에게 토한 기염은 나의 배우자를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틀 전 새로 들여올 물건이 있어, 예전 것은 어찌할지 논의한 적이 있다. 나는 버리자는 것이었고, 배우자는 두었다가 남을 주던지 하자는 것이다. 나는 쓰던 것이 많이 낡아 버리는 것이 좋겠다 계속 이야기하였고, 배우자도 이에 동의를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래서 물건을 버렸고, 이게 사단이 되어 저녁때 퇴근한 아내는 '자신은 절대 그런 적 없다'라고 언쟁이 붙었다.


억울한 마음에 부아가 치밀고, 이제 모든 의사 결정은 회사에서 하듯 회의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최소한 뭔가를 하기 전에 카톡으로 남겨놓는다거나. (좀 치졸한가)


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은 상태에서 아이가 밥투정을 하니 화가 날 수밖에. 그리고 아이와의 밥상 싸움은 늘 그렇듯 꽤나 싱겁게 끝났다. 아이는 웃으면서 귀여움을 떨고, 대략의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나는 연어가 싫어요."

"여태까지 먹었는데 왜 싫니?"

"그냥 줘서 먹은 거예요. 달걀 프라이해줘요."

"그럼 달걀이 먹고 싶다고 제대로 말하던지."

"연어가 싫은걸 어떡하냐고요"

(연어 싫어하는 걸 모르냐는 말이겠지)

어쨌든 달걀이나 연어나, 상세한 영양학적 특성은 다르겠지만, 단백질이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이가 부모한테 짜증 내거나, 아이에게 다짜고짜 화가 나거나, 배우자와 예열 없이 불꽃 튀기는 언쟁을 벌이는 것 모두 나를 포함한 누구나 하는 행동이다.


대체로 우리는

1. 가족이 한 말에 이해와 수긍의 제스처도 없이 다짜고짜 '그건 아니지' 혹은 '그럴 리가 없다'라고 말한다.

2. 이는 나의 생각이 100% 맞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상대방의 생각이나 말에는 0.1초의 시간도 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세상 공감도 잘하며, 남의 말에는 '아 그렇군요.' 혹은 ' 아,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나 봅니다.'라고 응대도 잘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가족에게는 참 야박하다.


항상 '나' 위주로 생각하기에

3. 가족 간의 이견이 붙거나 오해가 생기면 감정적으로 치닫고

4. 한 명에게 화가 났던 마음을 참지 못하고, 또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전가하는 것 아닐까?


세상 끝까지 나를 지켜줄 내 편이라 생각하기에, 우리는 때론 함부로 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뭐든 내가 맞고, 혹은 내가 맞다고 해주길 바라는 마음. 아니, 나는 항상 그래 왔고, 혹은 그래 왔기에 그에 맞춰주길 바라는 마음. 뭐, 가족이라면 충분히 기대해 봄직한 사항이지만 말이다. 연어를 싫어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에 섭섭하고, 그 물건을 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무시했기에 화를 낸 것이겠지. 물론 달걀보다는 연어가 더 몸에 좋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어른들 말처럼, 가족에게 잘못된 일을 말하거나 시킬리는 없는데, 우리는 참 서로의 말을 듣는데 인색하다. 아니 소리는 듣지만 왜 그런 말 혹은 잔소리를 하는지, 그 기저에 어떠한 장점 혹은 우려 사항이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뭐 한 번의 다짐으로 쉽게 고칠 수 있는 태도였다면 이미 나를 포함 많은 가정들이 평온한 생활을 즐기고 있지 않겠는가.


당장 이번 주말이라도 가족의 말이나 행동에 그냥 '욱'하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것처럼 시간과 마음의 거리를 둬보자. 그렇게 조금은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면 평온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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