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을 한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으니, 육분의 일은 지난 셈이다. (나는 육 개월 휴직을 했다.) 자기 계발서에서 그리는 '성공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면 아직 다섯 달이나 남았다고 긍정적 마인드를 갖겠지만, 난 벌써 17%에 가까운 시간이 소비되었다고 생각하고 만다. 그건 아마, 육아휴직이라고는 했지만,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가는 낮 시간 동안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우아하게 전시회도 구경하고자 했던 내 현실적 계획이 틀어졌다는 점과, 앞으로도 내 휴직 기간을 그런 식으로 보내지 못하리라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그런 '우아한 삶'을 누린다고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요새 던지게 된다.
우리는 보통 목표 혹은 목적 지향적으로 산다.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지만, 자신의 일에 자기 계발 혹은 성취, 소명의식이라는 것을 더하여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것도 모자라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해 After 6 Life라는 목표를 만들고, 어떠한 '의미'를 추가할 것인지 고민한다. 즉 하나의 커다란 목표를 만들고, 그 목표를 이루는데 희생한 것에 대한 보상 목표를 세우고, 또 그 보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바쁘게 살아온 나를 위해 스트리밍 영화에 맥주와 치킨이라는 또 다른 보상 활동을 하며 거기에 의미를 더한다.
요새 After 6 Life를 카피로 내세운 SUV 광고가 있다. 퇴근 후 한강에서 카약을 타거나 혹은 요리 교실을 열거나... 자아를 실현하는 멋진 현대인에 어울리는 차량임을 강조한 것이다. 출퇴근을 하던 시절이야 이를 당연한 trend로 여기고 '애들이 좀 더 크면 나도 저렇게 살아봐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지금은 '회사 일'이라는 한 축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보니 아득바득 돈벌이의 삶과 돈 쓰는 삶을 구분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반대로 지금의 나는 뭐 하나 이루는 것 없는 생활을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이, 즉 가족에만 집중하는 지금이 너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이대로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의 온탕과 냉탕을 반복하고 있다. 그게 지금 나의 모습이다.
나의 아이들은 어떠한가? 하루 종일 같은 블록을 쌓았다 무너뜨리길 반복하고, 같은 만화를 수십 번씩 보면서 똑같이 즐거워하고, 이런저런 캐릭터 그림을 반복하여 그렸다 지운다. 그런 그들은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생산성이 없는 행동, 소위 의미 없는 행동에 죄의식을 느끼도록 교육받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지만, ('편안하고, 나만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충분한 돈과 건강을 마련하는 것'일 수 있다. 대체적으로는 말이다. 물론 이것도 여전히 수단에 불과한 것 같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더라도, 수많은 과정 목표들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답답해 보일 것이다. 살아가는데 아무 쓸모없는 로블록스나 마인크래프트 게임 방송을 시청하는 아이를 한심하게 바라보거나, 애써 '이 게임을 알아야 또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겠지'라며 억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언제부터 우리는 '의미 있는 행동' 혹은 '목적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생산성 있는 행동'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그건 당연히 스스로를 먹여 살리고, 나의 아이들을 키워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임을 자각하기 시작한 때일 것이다. 소위 '철이 드는 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때가 지나고 나면?
나의 아이들에게 의미와 생산성을 주입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아직 한참이나 남은 일이지만, 나의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나는 어찌 될까 생각을 하고 말았다.
나의 노년을 어떻게 향유해야 할 것인지, 불편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고민이지, 솔루션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 정도로 적극적인 사람도 아니고, 솔루션을 찾기 위해 고민을 거듭할 만큼 부지런한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그냥 '던져진 대로' 살아가는 실존주의자에 가깝다. 그럼에도 언젠가 닥칠 '은퇴' 후의 삶은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준다.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는 그저 '이 회사를 나가면 재취업이 가능할까?' 내지 '사무직 월급쟁이라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뭘 먹고살지?'라는 걱정만을 하였다. 물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게 가장 큰 고민이 될 것이다.
다만, 아이를 키우며 바라보며 느낀 것은, 나는 이제 저 아이들처럼 하루 종일 장난감을 만지고 노는 게 즐거울 만큼 소위 '의미 없는 행동'에 빠지진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뭐 이 나이에 장난감을 가지고 놀 건 아니고, 장난감과 같은 수준의 즐거운 소일거리로 하루 이틀 혹은 몇 달까지도 가능은 하겠지만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살아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가는 것이다.
나의 자식들과 사회가 굳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때가 오면, '의미'에 집착하며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쩜 우리가 TV에서 소개하는 '자연인'의 삶을 시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의미와 목표에 함몰되어 있는 우리에게, (물론 우리 입장에서의 의미이지만) 그 의미를 빼버리고도 멋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일종의 경외와 때로는 불편함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돈, 승진,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 (때로는 여기에 가족에 대한 무신경도 포함되어 있지만) 소위 우리가 과정 목표로 삼는 것들 없이, 그런 것들에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 말이다.
이제 막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어이없긴 하지만, 이 아이들의,목표는 없지만 즐거운 생활은 나에게 당장은 몇 년 후 혹은 십 수년 후에 벌어질 문제에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래서 며칠 전 아침, 재활용품을 버리기 위해 문을 나서는 옆집 할아버님을 만났을 때 (나에겐 아버지 뻘이긴 하지만) 실례되지만 '살아있다는 것에 집중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라고 질문을 드리고 싶었다. 은퇴 후의 삶을 살아가는 데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말이다. 참 쓸모도 없다. (그래서 역시 사람은 정신없이 바빠야 쓸데없는데 빠지지 않는다는 어른들 말씀이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이 두루뭉슬한 생각의 흐름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날카롭게 나에게 다가올 것이고, 아이를 키워내는 만큼 나에게 답을 요구하는 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뭐 또 어떻게든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