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대로라면 오늘은 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어야 했다. 여기 서울은 아주 맑고 구름도 없는 날씨로, 만약 입학식이 열렸다면 딱 좋은 날씨였을 것 같다.
업무 인수인계로 생각보다 바빴던 지난주를 마치고, 이번 주부터는 아이의 방과 후 교실 등록 (필요하다면 학원 등록)과 아이들 학교 시간 동안의 '내 스케줄'을 짜 볼 생각이었지만, 출근한 아이 엄마를 제외하고 삼부자가 집 안에 꽁꽁 숨어 생활하고 있다.
진작에 이 사태 때문에 아이들은 지난주부터 일주 넘게 집안에 있다. 집돌이인 첫째와 달리 외출을 좋아하는 둘째가 걱정이었지만, '맘대로 놀게' 놔두었더니 갑갑해하지도 않고 잘 지내고 있다.
직장 동료 엄마들처럼, 나의 배우자와 나는 한동안 학습지 교사도 방문하지 않도록 조치를 했다. 온라인으로 하는 수업 하나를 빼면, 두 아이 통틀어 네 개의 수업이 중단된 셈이다. 홈스쿨링을 부모가 직접 시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라고 하던데, 정말 어르고 달래도 보고 윽박질러보기도 했지만 '단 한 줄도' 보지 않고 있다.
이대로 밀리면 이제 엄마 아빠의 공부하자는 말을 듣지 않게 될까 걱정 반, 나도 그래 왔듯 개학 전에는 그저 신나게 놀게 하는 게 맞지 않나 반,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후자 쪽으로 방치하는 현실이다.
평소처럼 오전 5시 40분에 눈을 떴다가, 이제 한동안은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다시 잠을 청했지만 겨우 한 시간 정도 더 선잠을 자고 말았다. 그리고 부재중을 알리는 자동 응답 장치를 걸어 놓았음에도 휴대폰으로 회사 이메일을 체크했다. 혹시 중요한 메일이 도착했으면 팀 내 동료들에게 '토스'하려고.
내 몸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할 듯하다.
공식 휴직 일자는 오늘부터지만, 어제가 삼월의 시작인 관계로 뭔가 '의식'을 치르기로 했다. '만세!' 삼창처럼 회사와 일로부터의 해방감을 표출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대청소'로 기분을 새롭게 하기로 했다. 겨울 옷들을 정리하고 세탁을 하고, 드레스룸의 묵은 먼지들을 닦아내고 안 쓰는 물건들도 과감히 정리했다. 한 시간 넘게 정리하고 나니, 깔끔해진 모습에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정리할 곳이 집안 곳곳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언제 또 다 정리를 하나 싶기도 하다.
세워야 할 계획보다 정리해야 할 이러저러한 일들이 왜 많은 것일까?
가설 1. 원칙의 부재
- 집안일이든 회사 일이든 일단 되는 대로 일을 처리하다 보면 중구난방으로 벌려져 있고, 애써 무시하려 해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인 지경에 도달하고 만다.
가설 2. 원칙의 부재를 꼬집는 사람들 탓
- 배우자든, 직장의 상사든, 원칙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사람들 때문에, 즉 그들의 문제 제기로 인해 그냥 묻어두어도 되는 일들을 끄집어내어 긁어 부스럼을 내는 경우도 있다.
가설 3. 수많은 '내'가 만든 집단의 mess
- 게으르건 의욕이 넘치건, 사람들은 계획을 세우기 마련이고 이를 어느 정도 실천에 옮기다 보면 뭔가가 실행되기 마련이다. 이런 개개인의 실행이 몇 명만 되더라도 가끔은 통제 불가능한 일이 생겨버리고 만다. 가령 장난감을 정리하겠다고 구입한 수납장의 위치 때문에 방안의 나머지 가구를 전부 옮겨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처럼.
어찌 되었건, 향후 6개월 동안 길게~ 머물러야 할 집이기에, 어디 가지도 못하는 이때가 정리와 청소를 하고 뭔가 새로움을 다짐하기에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마음의 위장을 비우는 일?
말 그대로 음식을 먹고 소화하는 위 말이다. 언젠가 시사 프로그램에서 아무리 배가 불러도 후식을 먹을 수 있는 건, 후식이라는 다른 '카테고리'의 인식이 생기면 이를 마련하기 위해 위가 알아서 '공간'을 마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새로운 모멘텀을 맞이하여 '청소'라는 행위를 선택한 것은 일이 아닌 '휴직', '양육'이라는 단어를 들여놓기 위한 여유를 마련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정신이 행동을 지배하건, 건강한 신체가 건강한 정신을 만들어가던, 우리는 어떤 생각 때문에 행동을 하고 또 그 행동을 하면서 생각을 가다듬게 된다. 단순히 드레스룸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내가 주도해야 할 공간'이라는 의식이 강해지자 좀 더 내 방식대로 그 공간을 재 디자인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면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듯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더 생각하고 현실화해 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낡은 양복 한 벌을 버리는 일은 단순한 폐기가 아닌, 내 마음속에 있는 L이라는 회사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조금 더 버리고 '아빠'라는 자리를 좀 더 채우는 의식 인지도 모른다. 양복을 버리듯 한 순간 놔버림으로써 할 수 있는 실행이 있는 것이며, 반대로 복귀 시점이 되면 뭔가 또 구매라는 행동으로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내가 따르는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인간 정신은 그가 경험한 기억의 다발이라고 했다. (아니 그가 그런 식으로 말했다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나와 나의 사고는 내 주변의 사람들과, 그들을 통해 생겨나는 일과 그 일이 벌어지는 장소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당장 휴직 1일 차에 불과하지만 휴직이라는 공식적인 '단절'을 시행한 덕에, 이미 오늘 아침과도 다르게 '회사' 따위에는 신경이 덜 가고 내 아이의 점심과 저녁 식사에 집중하게 된다.
환경이 사람의 정신과 행동을 지배한다면, 과감히 그 환경을 바꾸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 환경이란 '이동' 또는 '교체'를 전제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뭔가 끊고 맺을 수 있는 정신적이거나 상징적인 모멘텀도 좋을 듯하다. 그게 제대로 작동하기만 한다면.
아이들은 잠시 그들끼리 더 놀라고 하고, 이번엔 다용도실을 정리해야겠다. 그리고 나의 생각도 좀 더 정리되기를 바란다. 무엇을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머릿속부터.
P.S. 오후 네 시 교육부 발표로 개학이 2주 추가 지연되었다. 내가 쉬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대로 애들을 두어서도 안될 것 같은데 고민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