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적으로, 돈의 힘 또는 먹고살기의 치사함 때문에 임원이나 직장 선배의 꼰대 같은 지시나 인격을 갉아먹는 날 선 짜증은 다 받아내고 있지만, 막상 나는 내 가족의 작은 성가심에도 그만 폭발하고 만다. 참 못났다.
정말 좋은 아빠이고 남편이지만 직장에서는 주변 사람들을 모질게 굴려먹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좋은 아빠라 생각한 건 내 추측이지만.) 나는 그 반대 타입이고, 획일적인 이분법으로 따지자면 전자가 훨씬 현명하게 행동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상황은 대강 이러하다.
숙제를 하자고 한다.
"지금은 할 기분이 아니야!~" "놀지도 못했다고!" 짜증을 낸다.
십 분만 공부하고 놀자며 겨우 자리에 앉힌다.
둘째가 달려와 그걸 굳이 자기가 푼다고 한다.
큰 애와 둘째가 학습지와 펜을 집어던지며 서로 싸운다.
어떻게든 공부를 시키고 놀이 시간을 준다. 나도 잠시 휴식을 한다.
좀 있다가 첫째가 온다. "아빠, 동생이 벽에 낙서했어. 히히히."
이미 방문은 사인펜으로 한껏 낙서가 되어 있다.
아세톤으로 낙서를 지우는데, 애들이 부스러기를 잔뜩 흘리며 과자를 먹고 있다. 내가 지우는 것을 보면서.
그 과자 부스러기가 그만 성가시게 하고 만다.
막상 이렇게 써놓고 보면
심각할 것도 없는 일상의 악의 없는 행동인데 왜 나는 항상 화를 내고 마는 걸까?
휴직 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화를 내는 빈도가 늘어날까 걱정하는 배우자를 보며 왜 화를 내는지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혹은 어떻게 참을 수 있는지를.
다시 나의 사회생활로 돌아와서, 내 직장 생활의 탈출구는 험담 또는 나와 같은 고민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한잔 어울려 푸는 넋두리와 유대감. 그럼 배우자와 둘이 몰래 아이들의 험담을 해야 할까? 혹시나 정말 모르게 하면 모를까, 아마도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서로 걱정하고 답도 없는 고민을 나누며 서로를 토닥이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해소의 방편일 뿐 답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내 상사의 스케줄, 그가 무엇을 보고받고 있는지 누구와 만나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그가 요새 관심을 가지는 주제가 무엇이며, 어떤 미팅에서 어떤 일 때문에 논쟁이 붙었다거나 혹은 무척 만족했다거나 하는 사안들을 확인한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다. 회사의 마케팅 전략을 짜다보면 항상 고객만 볼 수는 없다.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과 나의 임원이 그 지향점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나도 그에 맞게 업무를 기획할 수 있다. 그 일이 무척 고되고 회의감도 들지만 '일이 되게 하려면' 해야 하는 마땅한 과정으로 난 생각한다.
물론 나는 내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알고, 어떠한 색을 좋아하는지도 알고 있지만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는 알고 있지 않다. 난 내 아이를 관찰은 하지만 "왜?"를 질문한 적도 없고, "그럼 무엇을 해야 하나"를 고민하지도 않는다. 내 아이의 '의도'에는 관심이 없다. 왜냐면 난 언제까지 숙제가 되어 있어야 하고, 언제 목욕을 하고, 언제 잠을 청해야 하는지 내 입장에서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추도록 강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와 달리 집에서의 나는, 내 스스로를 '최종 의사결정권자'로 삼은 것이다. 말하자면
내 아이에게 마치 임원인 양 행동한 것
목표와 되어 있어야 할 일을 내 입장에서 세웠기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계획에 없거나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면 화가 나는 것이다. 과자 부스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청소가 귀찮은 내가 바라지 않는 일이다. 오늘 학습지 세 페이지를 푸는 건 학습 능력을 위해 필요하지만, 굳이 세 페이지인 것은 내가 생각한 계획이고, 내 아이를 위해 세운 '내 계획'일 뿐이다.
하지만 참 어려운 주제다.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지금의 이 어린아이와 대화로 함께 이야기하고, 합의하고 함께 목표를 그려나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 (설령 그들의 머릿속에 있다고 해도 말이다.)
인생서 같은 책들을 보면 학교 때부터 목표를 가진 이들이 성공적인 삶을 산다고들 하지만 그 목표를 내가 세워주고 아이들에게 벌써부터 지워줄 필요가 있을까?
나는 왜 휴직을 택했을까? 다시 자문해 본다. 아직 머릿속에 분명한 그림 없이 당장의 통학과 행정적 처리 등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내심 이 아이의 로드맵을 이참에 세워봐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또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낼 터이고 아이도 힘들고 아빠로서 보내는 이 소중한 시간이 내 스스로에게 고역으로 다가올 것이다.
아빠로서의 시간이 근무 시간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놀자. 그냥 아이와 어울려 놀아보기만 하자. 이 글을 보면 나의 배우자는 기겁하겠지만.
나를 믿도록 하기 (네 임원이 아니라는 점을^^)
아이들의 이야기 끝까지 들어주기
목표와 목적과 성과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어울려보기
얼마큼 무엇을 배웠나 보다, 무언가 하는 습관 만들어주기 (단 하루 20분 만이라도 뭔가에 빠져있도록)
크던 작던 세상의 많은 일들에 관심 갖게 하기
내 계획의 실행이 아닌, 이 아이들과의 시간을 그저 함께 살아보기로 다짐해 본다.
미래를 위해 뭘 준비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아빠처럼 고생할 것이라는 거. 아빠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얼마나 힘쓰는지, 나처럼 안되려면 무엇을 하면 좋고 무엇을 피하면 좋을지, 그래서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할지는 먼 훗날 스스로 깨닫게 해야지. 어차피 내가 그랬듯 그건 그때가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우리 아이들은 아직 꼬꼬마들인데,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조차 너무 앞선 걱정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