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에도 전략이 있을까?

본격적인 육아 휴직에 앞서 걱정되는 것들

by 제성훈

1월 초 폭탄 같은 선언으로 내뱉은 육아휴직은 의외로 아무렇지 않은 듯 흘러가 3월 첫날부터 6개월을 보내는 것으로 인사팀 결재까지 났다. 한 편으로는 다른 직장에서 일어났다는 볼썽사나운 꼴도 보지 않았지만 너무 원만히 흘러가는 바람에 나 자신이 혹시 회사에서 잉여(?)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 자신도 예상했듯, 주변으로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갔고 덕분에 조직 내에서 누가 소문을 잘 내는지, 누가 귀가 밝은지, 다른 한 편으로는 누가 소문의 끝에 있는지도 재확인하게 되었다. (심지어 소문이 아직도 비껴가 닿지 않은 이도 몇몇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반응은 쉴 수 있을 때 쉬는 것이 좋다는 반응. 그중 일부는 어디로 이직 준비를 하느냐는 반응이다. 이직을 위한 약간의 자기 계발과 이력서 쓰기, 자유롭게 면접 보기를 위한 것이 아니냐고.


쉬고 싶은 마음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아이를 위한 결정이었는데 좀 섭섭한 느낌도 들었다. 육아 휴직 선배인 회사 후배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본인도 이직이나 창업 준비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어? 나는 창업 준비하냐는 말은 못 들었는데... 남의 눈에도 나는 사업할 강단은 없어 보이는가 싶다.'


어쨌든 이제 이 주가 남은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육아휴직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내가 맡았던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에 폐 끼치지 않고 넘겨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건 어쩌면 내 성향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나의 배우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일을 완벽히 마치고 넘길 수도 없는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반이 되어있던 2/3가 되어있던 마찬가지야."


그렇긴 하다. 일이 마쳐있다면 인수인계를 할 일이 없다. 그리고 일이 진행 단계라면 진도가 많이 나가지 않아야 좋을 수도 있다. 그래야 인수자의 페이스대로 쉽게, 나머지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 많은 것'들이 내가 한 일을 뒤치다꺼리하느라 힘들었다고 앓는 소리 할 모습을 상상하니 하나라도 더 해놓고 가고 싶었다.


엑셀을 열고 좌측에는 내가 하는 큰 일들의 항목을, 우측으로 상세 항목, 지금까지의 진도와 남은 과제, 관련 참조 문서 리스트와 마지막으로 이 일을 하기 위해 협력해야 하는 카운터파트의 리스트를 적었다. 처음에는 몇 줄 되지 않았는데, 인수자가 궁금해할 수 있는 내용들을 추가로 넣기 시작하니 금세 양이 늘어났다. 그리고 조금은 뿌듯해졌다.

'이 정도 정성을 보였으면 덜 험담하겠지.' 사실 그럴지는 과연 모르겠다.


일을 받는 사람은 크게 두 유형으로 갈린다.

1. 엄청 똘똘하게 혹은 똘똘한 척하는 유형 :

인수인계를 할 때 내용을 세세하게 묻고, 자기 것으로 소화 혹은 소화하는 척하며, "훗, 이 일은 OOO까지 고려해야 하는 일 아니었을까요? 이 부분은 제가 맡아보죠."라고 말한다. 실제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2. 묵묵히 듣는 유형 :

정말 듣기만 한다. 아마 누군가 나중에 왜 이 일이 진척되지 않고 있냐 하면, 내가 제대로 인계를 해주지 않아서 몰랐다고 할 것이다.


내가 애정 하는 일은 두 번째 유형에게, 그렇지 않은 일은 첫 번째 유형에 맡길 참이다. 사실은 반대여야 하지만. 그리고 어쨌든 엑셀 상에 정리해 놓은 To Do List를 하나라도 더 지워야겠다. 그럴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말이다.


무기력을 대하는 자세. 과연 휴직을 하면 달라질까?


사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다. 대다수의 아빠들은 집에서 풀어져있다. 아니 다른 의미로는 방전이 되어 있다. 아이와 놀아줘야 한다는 것도, 공부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이건 '게으름'과는 다른 문제인 듯하다. 하기 귀찮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몸에 활기라고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아이와 텐션을 가지고 잘 놀아주고, 잘 가르쳐줄 수 있을까?' 지금이야 피로를 회사로 돌리고 있지만 과연 사회라는 공적 영역이 사라지고 나면 충전이 될 수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운동을 해볼까?' 아무래도 몸에 직접 활력을 넣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 나의 배우자도 모르지만, 나는 심한 우울감에 휩싸였던 적이 있었다. 거의 일 년 이상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왜 그런 심한 우울감에 휩싸였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집사람과 많이 싸웠었다. 집사람 눈에는 그저 이 남자는 아빠가 되었는데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이였을 뿐이다.


당시의 상태를 그래도 나름대로 진단해 본다면, 그건 아마도 '어떻게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 현실적으로 이 아이와 가정을 책임져야 하다는 의식이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다가온 것 같다. 첫 직장인 마케팅 리서치 사에 취직했을 당시 신입사원인 나에게 주어진 일은 150 페이지가 넘는 데이터 테이블을 주고 하루 만에 파워포인트로 보고서를 완성해 보라는 것이었다. 아마 시험 삼아 준 일이었겠지만 일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그저 남이 한 보고서를 참조하라고 주었을 뿐이다. 그때의 막막함과 닮지 않았을까?


남이 하는 것도 보았고, 남들은 그렇게 다 해오고 있는 일이고, 나 자신도 언젠가 해야 할 일로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막상 마주치면 느껴지는 막막함. 그리고 과연 그 길에 끝이 있을까 하는 기분.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그저 열심히 치른 시험은 좋은 점수를 내는 반면, 두 문제 이상 틀리면 등급이 떨어진다는, 그런 류의 생각이 머리에 스치면 불안감에 마음이 초조해지듯 말이다. 50문제 중에 2문제 이상 틀리면 탈락이란 생각을 하면 아무래도 처음부터 시작하기 조차 겁이 나는 법이다. 나도 당시에는 '이 아이와 함께 어디 한번 잘 살아보자'가 아닌

실수 없이 좋은 아빠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이 지금의 나를 다시 사로잡을지 모르겠다. 과연 이 육 개월이라는 시간을 나와 아이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오늘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일이 되어가는 방향으로 놔두기로.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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