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잠시 내려놓고

by 제성훈

휴직 기간 중에도 회사에서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모처럼 일찍 일어나 검진센터로 향했다.


아침 6시 50분, 평소 출근 때 집을 나서는 그 시간에 맞춰, 직장을 향하는 다른 이들과 함께 움직이고, 검진센터 빌딩 내 입주해 있는 회사원들(사원증을 목걸이에 걸고 다니는 이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자니 참 '내 팔자도 요즘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김없이 리셉션에 접수하면 내미는 우울증 자가 진단표를 올해도 받아 들었지만 (참고로 매년 같은 곳에서 검진을 받고 있다), 우울감이나 무력감, 정신적 피로 항목들에 거의 체크할 항목이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주부가 적성인가."


그도 그럴 것이, 아직도 가끔은 회사에서 전화가 와, 과거 내가 처리한 일에 대한 문의를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심하게 짜증이 나고 어찌나 (그분한테는 죄송하지만) 꼴 보기 싫어지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생활에 진저리 나 있었던 모양이다.


자기 계발이니, 자신의 일을 사랑하자느니 이런저런 말들을 붙여보기도 했지만, 무슨 일을 하던 먹고살기 위한 고됨은 감당하기 벅찬가 보다. 물론 가정주부의 삶이 편하다는 것은 아니다. 육 개월이라는 정해진 주부 생활이다 보니 임시 파견직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당연히 지금의 일이 힘들다기보다는, 매일 똑같이 조여 오던 과거의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행복한가?


솔직히 우울증 진단 항목에서는 비껴갔다 하더라도, 매일같이 반복하여 쓸고 닦고, 밥하고 먹이고, 싫어하는 숙제시키고... 오롯이 아이들만을 위한 생활을 하다 보니, 또 몇 달이 되고, 몇 년이 되면 이 또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겠다 싶다. 그렇다고 누구는 열심히 회사에 충성해 팀장도 되고 임원도 되겠지만, 근데 또 그것조차 아주 짧은 순간의 성취감을 줄지는 몰라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할 것 같다.


우리 모두, 각자가 하는 일은 모두 달라도, 그 보람은 한순간이고, 나머지 시간은 긴 인내 혹은 긴 어둠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건 아마 우리가 무엇을 이루어내든, 그 결과는 나로 인해 생겨났을지는 몰라도 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잘 차려놓은 집밥이 '내'가 아니고, 내가 기획하여 제작한 TV광고가 '나' 자신은 아니라는... 결국 내가 만든 것은 있어도, '나'는 없다는 먹먹함.


누군가의 책에서 보았듯, '무엇'이 되거나 이루려고 애쓰기보다, '그냥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고 만족할 수 있어야 하는 걸까? 그래야 인생이 좀 더 평온해질 수 있는 것일까? 마흔이 훌쩍 넘었음에도, 이를 알고는 있지만 맘 깊은 곳에서 수긍하지 못하는 건 나뿐만은 아닐 것 같다.


인생이 가까이 보면 비극인 이유는, 이루고자 하는 바를 못 이룬 안타까움 혹은 그것을 이루더라도 행복하지 않은 감정 때문일까? 그리고 길게 보면 희극인 것은, 이 일련의 비극을 맛보는 과정에서, 결국 모든 게 부질없었단 걸 알아채기 때문에 이불 킥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일까?


연관이 있다면 있고, 어찌 보면 생뚱맞지만, 육아도 가까이 보면 고난이고, 멀리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게, 내가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애써봤자, 아무렇지 않게 방관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제는 아이가 EBS 학교 수업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교과 과제도 하기 싫어해 악을 쓰며 싸웠다 (여덟 살 아들과 말이다). 물론 하라고 시키는 나와, 나중에 하겠다고 버티는 아이와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하지만 오늘 검진을 마치고 집에 오니, 아이는 어제 과제는 물론 오늘 과제도 모두 다 마쳐놓은 상태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일은 풀리게 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애쓸 필요는 없어. 아이도, 일도, 걱정하는 것보다 쉽게 그리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풀려가는 거야.'

이렇게 되뇌어본다. 그리고

'내 인생도 그런대로 흐르다 보면 좀 멋지게 보일 거야.'라고.


흔히들 직장에서 3/6/9개월 혹은 3/6/9년을 이야기한다. 석 달 혹은 삼 년마다 자신의 일상에 회의감이 한 번씩 밀려온다는 것인데, 그러고 보니 내 직장생활도 올해가 만 18년, 지금 회사가 만 12년, 그리고 파견직 주부 생활이 이제 3개월째이다. 참 센티멘탈해질 시기구나.


어김없이 지금도 놀이와 저녁식사를 요구하며 아이들은 나의 글쓰기를 방해하고 있다. 이제 다시 주부로 돌아갈 시간이고, 또 그렇게, 늘 그랬듯이, 살아가는 데 집중하면 될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부모가 된다는 건, 마음을 소진하는 일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