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다

by 제성훈

드디어 등교를 하였다. 학급 인원을 절반으로 줄여 수업을 진행하는 터에, 2일차인 어제 첫 등교를 하였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우려가 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첫 등교를 하고 돌아온 모습을 보니 마음 한 켠에 안도감이 든다.


이는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모만의 막연한 불안감에서 시작했을지 모른다.

초등학교 일학년이 되었는데 이제껏 학교에 가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지 못했다는 것. 말하자면, 학교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학교라는 틀에 앞으로 16년 정도, 지루할 수도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안쓰럽다면서도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의 감정이 다른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난 그냥 '이제 됐다'(이제 제대로 학교를 가는구나)는 정도인데, 나의 배우자를 포함한 엄마들은 뭔가 울컥하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뱃속에 있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지?'하고 말이다.


아직 자고 있는 막내 때문에 등교길은 함께하지 못했지만, 하교길은 마중을 나섰다. 모두가 조심스러운 터라, 각 학급별로 담임선생이 교문 앞까지 아이들을 인솔해오고, 교문 밖 부모가 자기 아이임을 손을 흔들어 알려주면 한 명씩 교문을 지나 부모 품에 안겼다.


원래 학교란 곳이 그렇기는 하지만, 팬데믹때문에 막상 부모는 엄격히 교문 밖에만 있어야 하니, 이제 나의 아이가 '부모의 품'을 벗어나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현실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부모의 보육을 대행해준다는 느낌이 있어 '단절'의 감정이 없었는데 말이다.


다른 세계, 유치원처럼 하루 하루의 일상을 사진을 찍어 업로드해 주거나, 전화로 오늘은 무엇을 했고 누구와 놀았는지 알려주지 않기에, 아이는 이제 부모가 모르는 본인만의 추억을 스스로 만들어 갈 것이다. 누구와 싸웠는지, 선생님에게 혼나지는 않았는지, 아이가 말하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그런 영역이 하나씩 쌓여갈 것이다.


'이 아이가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부모라서 그런지, 이 아이가 가진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마음이나 행동의 취약한 부분이 (물론 내 입장에서 본 아이의 취약점이지만) 혹시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혹은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게되지는 않을까 벌써부터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에게 학교 생활이 어땠는지, 누구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집요하게 질문을 할 것이고 (심지어 나의 부모님은 아직도 내 회사 생활까지 궁금해하며 물어보시지만), 아이는 계속 답을 피하거나 귀찮다고 짜증을 낼 것이다. 남자아이니까 더욱 그럴게 뻔하다.


첫 등교길, 엄마가 한 번 안아보자 했더니 부끄러워 주위에 다른 사람은 없는지 둘러 보았다는 후문을 들으며, 내 아이도 나를 닮아 어지간히 부모한테 무뚝뚝하겠다 싶다.


스스로 잘 해나가길, 그럼에도 힘들 때 부모에게 기댈 줄 알기를, 그리고 그 아이의 사인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구원투수처럼 세이브를 잘 할 수 있기를라볼 뿐이다.


P.S. 점심은 짜장면.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중식이 입학과 졸업의 메뉴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집밥'이 아니라는 상징성 때문이 아닐까하는 억지 추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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