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를 향한 감정 소비

조금은 쩨쩨한 이야기

by 제성훈

육아를 하면서 가장 많이 부딪히고, 가장 많은 감정을 소비하는 대상은 막상 아이가 아니라 배우자다.


무엇을 먹이고 입힐지의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문제에서도 부부는 번번이 부딪히고 말지만, 이는 의외로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해결된다. 반면, 관계를 악화시키는 복병 (어디 한 두 가지겠냐만은), '시간'에 있지 않나 싶다. 바로 육아의 퇴근 시간 말이다.


사실 모든 일에 시작이라는 것은 대체로 명확하여, 요즘과 같이 코로나 19로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때는, 아이의 기상 시간이 육아 담당자의 공식 출근 시간이다. 그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고 그래서 감내가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퇴근은 좀 다른 문제다. 저녁 시간을 향해 갈수록 아이들은 미쳐 다 소비하지 못한 체력을 어찌나 발산하는지, 쿵쾅거리는 발걸음과 놀이의 강도 때문에 내 목소리는 점점 커지게 된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이라지만, 어느새 체력과 정신적 인내는 한계에 다다르고 만다.

'아내의 퇴근 시간까지는 30분. 조금만 더 버티자.'

이건 비단 나뿐만 아니라 모든 '집에서 기다리는 자'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마지막 스퍼트가 아닐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비교적 일정한 퇴근 시간을 가진 아내지만, 갑작스러운 일에 늦는다거나, "밥만 먹고 갈게", "많이 늦지는 않을 거야"라는 메시지라도 보내면 그 마지막 힘은 맥없이 풀려버리고 만다.


'늦지 않는다는 건 도대체 몇 시일까?'

'얼마나 혼자 더 버티라는 거지?'

그러다 아이가 뛰기 시작하면 그만 폭발하고 마는 것이다.


"아빠가 오늘 또 짜증 냈어."

"여보, 자꾸 화내면 애들 정서에 안 좋다고."

아 놔... 이건 당신이 퇴근 시간을 안 지켜서라고!!!

학교 과제를 하는데 스터디 모임에 늦게 도착하거나, 회사 프로젝트에 바쁘다고 딴짓하다가 '어? 겨우 이런 식으로 한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당장에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만, 실은 양육에 공동 책임이 있는 당신을 향하고 있다고.


알고는 있다. 결코 아이를 향해 "그만 좀 뛰어!"하고 소리 지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도 당장의 마음이 눈에 보이는 이에게 향하는 것을 어쩔까.


솔직히 나도 전적으로 육아를 맡지 않았을 때는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내가 출퇴근을 하던 시절,

"급하게 회식이 생겨 버렸어. 일찍 갈게."라고 종종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사실이 또 그렇기도 하니까. 그래서인지 당시 별 내색 없이 잘 버텨주었던 아내에게 고맙다는 마음이 든다.


나는 아직 마음의 수련이 부족한 것 같다.

'이제 좀 쉴 수 있어.'라는, 결승선은 아니더라도 마라톤 코스 중간중간 마땅히 있어야 할 음수대 같은 휴식 시간이 갑자기 없어지거나 자리를 바꾼다면 어떻게 감내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의 초안을 쓴 다음날 큰 아이가 아무 맥락도 없이,

"내 소원은 엄마, 아빠가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사는 거야."라고 해서 우리 모두를 당황하게 했다. 우린 싸우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논쟁하는 것인데, 아이의 눈에는 달리 보일 수도 있겠구나.


박해솔 작


어쩌겠나, 까이껏 감내해보지. 감정의 소비는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니까. 그래도 서로 한 가지만 약속한다면 참고 헤쳐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솔직하게 "11시까지 갈게."라고, 정확하게 알려주고 그 시간은 지키기. "금방 가"라는 말 안 하기. 조금 늦든, 많이 늦든의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한 기다림이 지치게 만드는 거니까. 퇴근 시간만 명확하면 페이스에 맞춰 달릴 수 있다. 그것이 상대를 위한 진정한 배려인 것 같다. 부부간의 신뢰라는 게 뭐 거창할 필요도 없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오늘 난 글렀어. 내일은 같이 달려보자."

아... 이것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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