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훈육

by 제성훈

"못생겼다고 버리면 안 돼"

"이게 공짜로 얻는 건 줄 알아!"

둘째는 나의 격앙되고 경직된 목소리에 얼어버렸다. 멋쩍은 듯 그만하고 자기를 안아달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번만은 단단히 훈계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다. 결국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지만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멜론 아이스크림이 어떤 문제 때문인지 녹았다 다시 얼어서 모양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이는 '정상적인 모양'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그 아이스크림을 휴지통에 그대로 던져 버렸다. 음식을 버린다는 것은 따끔한 훈계를 받아 마땅할 일이지만, 거기서 왜 '못생겼다', '공짜'라는 말이 나왔을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아이들에게 그건 비싼 거, 돈을 많이 주고 구입했으니 제대로 써먹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본전 찾기는 경제적 가치 측면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개념이겠지만, 장난감을 하나 사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그건 상어 아이스크림 스무 개도 더 살 수 있을 만큼 비싸서 안돼"라는 말이 과연 적합할까? 아이에게 경제 개념을 심어주고 싶지만, 오히려 자본주의의 씁쓸함을 넣어주는 것은 아닐지... 뭔가 돈으로 기를 꺾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공짜 음식은 버려도 된다는 뜻도 아닌데... 아이스크림에 농부의 땀을 붙여 말하기는 무리고, 설명하기 마땅치 않다. 어쨌든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본질은 버려둔 채, 돈의 가치를 강조한 것은 잘못한 일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쉬운 비유, 자극적인 비유를 남발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의외로 본질에 근접한 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표준 문구처럼 특정 상황에 자동 반사로 나오는 말들을 들으며 자랐고, 또 그런 말들을 습관적으로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못생겼다'는 또 어디서 나온 걸까? 못생긴 건 정상적이지 않은 걸까? 아이스크림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바람직한 표현일까? 막상 먹는 데에는 지장이 없으니, 이 마저도 마땅한 표현은 아닌 듯하다. 우리의 언어는 감정이나 의도, 때로는 사실조차 담기에 부족함이 많다. 그래서 언어에는 그에 맞는 말투와 표정과 제스처가 함께 동반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 조차 제대로 못하지만, 말과 글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도 언어는 심한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나는 아버지로부터 '이류', '삼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내 성적이 출중하지 못하거나, 내가 다니는 직장이 당신 눈에 변변치 않아 보였을 때 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나를 둘러싼 환경이나 (가령, 전혀 학구적이지 않았던 학교 분위기나 주변 친구), 나의 노력 부족 (지명도 높은 회사를 다니지 않았던 것)을 각성하고 더 나아가도록 자극하기 위해 그러셨는지 모른다. 만약 의도가 그것이었다면, 당신께선 완전히 실패하신 셈이다. 그 말에 반발해 더 열심히 안 한 것도 있으니 말이다.


의외로 회사나 주변에서도, 겉으로 보기엔 꽤 유복한 가정과 학교를 나왔는데도 자격지심에 똘똘 뭉쳐있는 동료를 심심찮게 발견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담을 한 건 아니다. 그들이 부지불식 간에 뱉은 말들의 공통점이 그러했다) 주로 부모로부터 다른 형제나 가족에게 비교를 당한 경우가 많았다. 의대를 다니는 동생에 밀려 찬밥신세였다던가, K대를 나왔음에도 S대를 다닌 형에 못 미친다는 비교를 당했다던가 말이다. 하지만 그들 부모도 단지 당신 자식의 '못났음'을 채근하려고 이런 말을 했을까?


그만 그 '못생긴' 아이스크림 때문에 여기까지 생각이 흘러가고 말았다. 내가 한 훈육도,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아이들에게 상처를 남길지 모른다. 병에 걸린 줄 모르는 전파자가 더 무섭듯이, 내가 모르고 한 말과 행동들이 더 큰 상처를 줄지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단어를 골라가며 글을 쓰는 것처럼,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수밖에. 부모의 언어는 언제든 자식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훈육을 할 때는 '문제의 본질에 집중하기', 어설픈 비유와 비교로 상처 주지 말기. 무조건 안된다는 말보다 왜 그것을 원하는지 들어주기. 오늘도 이렇게 말 안 듣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욱하고 말겠지만 그래도 다짐해 본다.


박해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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