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길을 걷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모르는 이라 당연한 일 아닌가, 그래서 낯설다기보다 비현실적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디에 살며, 집은 어떠한 모양일까, 혼자 살까? 가족은 몇일까?'
'어떠한 일을 하는 분일까?, 지금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지금 걸으며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순간 우연찮게 내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들을 나는 모른다. 그들의 삶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들이 과연 '존재'하는 것이 맞을까?, 홀로그램 같은 허상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가끔 들 때가 있다. 세상에 나만 있는 것 같은 고립감. 나만 느끼는 세상에 대한 이질감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가족인가 보다. 물론 아내와 아이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속속들이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알고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 나와 닿아 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오늘은 무엇을 함께 할지 이야기하고, 같이 웃고 화도 내니까. 그렇게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당연히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가족이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들은 훌쩍 자랄 것이고, 나를 멀리할 때가 올 것이며, 나를 이해할 수 없다 할 것이다. 그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그 순간부터 각오했던 일이고 감내할 일이다. 막상 닥치면 서운함은 몰려오겠지만 말이다. 아마 그때가 오면 '하나였던 시절이 있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혹은 운이 좋다면 철이 든 아이들이 다시금 나를 이해하게 되겠지. 그때가 오면 우린 또, 가족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사라지거나 흐려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건 우리 자신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함께 보낸 장소일 수도 있으며, 함께한 음식, 함께한 놀이일 수도 있다. 아이가 나에게로부터 마음의 독립을 하는 때가 오더라도, 성북천의 징검다리만 사라지지 않는다면, 한걸음 한걸음 나를 믿고 의지하며 건너던 그 아이의 마음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상어 모양 아이스크림이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아이는 내가 그를 생각한 마음을, 그 시절만큼은 잊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많은 것들에 우리를 깃들이게 하려고 노력하는지 모른다. 함께 먹고, 부딪히고, 살아가면서 추억이라는 작은 덩어리들을 세상 모든 것들에 조금씩 심어 놓으면서 말이다. 필요한 때가 되면 위로를 받기 위해 혹은 위로해 주기 위해. 그 때문에 나도 지금의 나 자신을 잊을까 봐, 혹은 언젠가 이 글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나의 아이들을 위로해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