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등교하는 날이면, 아내가 아침에 큰아이 손을 붙잡고 학교로 향한다. 그러면 나는 아직 곤히 자고 있는 둘째를 곁애 둔 채, 집 정리를 하고 빨래를 돌리며, 때에 맞춰 아이의 유치원 등원을 준비한다.
9시 40분, 둘째가 등원하면 12시 15분 초등학교 수업 종료까지 2시간 반 정도는 내 시간이다. 그때는 카페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거나 산책을 하며 간만의 여유를 즐긴다. 일주일에 고작 하루, 시간도 짧지만 그래도 한 숨 돌릴 수 있어서 좋다. 더 자주 있으면 좋았겠지만.
12시 10분 즈음, 출근한 아내를 대신해 학교 후문에서 아이를 기다리다 보면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그리고 아는 엄마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한다.
"친구도 못 사귀고, 짝도 없고, 서로 말도 못 하게 하는 모양이에요."
"친구를 사귀지 못하니, 이렇게 유치원 동기라도 없으면 어울릴 수도 없었겠어요."
좀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들은 같은 유치원을 나온 친한 아이들의 엄마들이었다. 세상이 험해진 덕에 아이들은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형제끼리라도 어울리니 다행이지만 말이다.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등교일이 상이한 엄마들하고는 따로 보지 않는 모양이다 (한 학급을 반으로 나누어 번갈아 등교 중이다). 키즈카페 가기도 맘이 놓이지 않다 보니, 기껏 유치원 동기들끼리 하는 것이라곤 하굣길에 놀이터에서 한 번 같이 노는 게 전부인 듯하다.
우리 아이도 친한 친구들과는 등교일이 다르다. 더군다나 나는 아이의 친구도, 친구 엄마도 모르니 인사말을 나눌 일도 없고, 놀이터에서 함께 놀리자는 말을 할 수도 없다. 그저 아이는 아빠랑 오늘 반찬은 무엇이었는지, 수업은 어땠는지 간헐적인 대화를 나누며 하교할 뿐이다.
오래간만에 휴일이라, 오늘 아내는 큰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후배 집으로 향했다. 그 집에는 첫째의 동갑내기가 있고, 둘은 엄마들의 친분 덕에 어려서부터 친구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게 보기 불편하여 외출을 하자해도 한사코 싫어하던 아이도, 친구를 본다는 말에 즐겁게 외출을 한다.
'그래, 너도 참 또래가 없어 많이 심심하겠구나.'
타인은 성가시고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인데, 나의 아이에겐 턱없이 그 수가 부족하다.
언젠가 신문 기사에서, '(교육) 공무원은 현시점에서, 사고만 나지 않기를 바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논조의 글을 읽었다. 등교 인원을 전체 학생의 1/3로 제한하고, 지금 내 아이의 학교는 한 반의 절반만 순번을 정해 등교한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만 수업을 하고, 학생이 발표를 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학생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쉬는 시간은 웬만해서는 없고, 급식은 칸막이를 두고 아이 혼자 먹는다.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은 알고 있다. 나도 대안은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가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외로움을 당연시하는 아이로 성장할까 두렵다. 사람 사귀는 일을 불편해할까 봐 겁이 난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빠란 것이, 친구 만들어주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더더욱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학원이라도 더 보내서 친구 만들 기회를 제공해야 할까? 이제 친구 만들기까지 사교육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씁쓸함이 맴돈다.
아빠는 짧은 지식이나마 너에게 코딩 원리를 가르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식일 뿐... 친구가 없는 것이 못내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