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칼 포퍼라는 과학철학자에 대한 나의 지식은 피상적이다. 과학철학도 생소하긴 마찬가지다. 또 과학철학과 자연철학이 구분되는 것 같으니 복잡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에 관심을 가질만한 이유는 있다.
직관과 통찰에 근거한 근대철학을 탐독하다 보면 두 가지 회의가 든다.
첫째, 자기 방어적이다. 비단 과거의 철학자들 이야기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철학서는 초반 한 두 장(Chapter)에 저자의 사상이 피력되어 있다. 나머지는 이를 입증하거나, 가능한 논리적 공격에 대한 또 다른 논리적 방어가 지루하게 이어진다.
둘째, 지나치게 극단적이다. 이성 혹은 직관에 의해 모든 진리를 통찰할 수 있다는 연역론이나, 모든 것은 경험의 축적에 의해 쌓여간다는 귀납론 모두 일방향적이고, 그래서 궤변으로 비치기도 한다.
데이터 마케팅의 숙제를 받은 나로서는 이들 철학자와 같은 논쟁에 직면한다. 누군가는 A라는 마케팅 방향이 맞다고 주장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Fact 혹은 논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마케팅은 정형화될 수 없으며 획일화된 방법론으로 접근할 수 없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쪽 모두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를 요구한다.
비단 칼 포퍼만이 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의 사상에 다소 매료되었던 이유는
절대 불변의 진리란 없으며 우리는 다만 계속해서 좀 더 나은 지식을 향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절대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인간의 힘으로 알 수 없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과학자다운 접근이다. 우리의 직관 혹은 경험으로 쌓은 지식을 통해 소위 진리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되는 가설을 세우고, 이것이 참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반증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설에 오류가 발견되면, 이를 보완하는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또 반증하는 과정을 지속하다 보면 오류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의 말에 따른다면, 무조건적인 의심도 없으며 절대적인 확신도 없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양을 다 보지 못한 이상, '양은 희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주장이나, 사물과 생물에는 이상적인 형상(Form, 그리스까지 올라간다면 '이데아')이 있어 '양은 원래 하얀 것이다'라는 논리도 배격한다.
요즘 세상에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할 바보는 없을 것이라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러하다 말할 수 있을까?
과학철학자인 그가 왜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을 저술하였을까? 그가 유대 혈통이었고, 나치를 피해 망명한 사실만 본다면 독재 혹은 집단주의에 지독한 반감을 가졌을 확률이 높다. 그 때문에 전체주의를 배격하고 자신의 생각, 배경에 연연하지 않는 민주사회를 강하게 옹호했을 것이다.
하나의 사상이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세상을 그는 두려워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옳거나 혹은 우월하면, 다른 누군가는 틀리거나 열등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 진리에 도달하는 대신, 그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을 선택한 것인지 모른다. 아무리 진리라도 절대적인 명제로 자리해버리면 우리는 더 이상 나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뉴튼은 맞지만, 그의 이론이 절대 명제가 되어버리면 아인슈타인이 나올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내 주변에는 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밖에 없는데, 그들(나의 생각과 반대인 사람)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며, 왜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할까?'라고.
지금의 우리는, 동질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선호하는 미디어와 채널을 구독하고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SNS 친구를 맺으며, 이런 습성의 반복은 친절한 알고리즘과 콘텐츠 마케터의 고객 개인화 맞춤 서비스로 인해 강화된다. 나의 취향, 나의 생각에 부합하는 콘텐츠에 주로 노출되면서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에 대한 무한한 확신과,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소통 없는 그리고 무조건적 의심을 하는 것은 아닐까? 전체주의는 독재가 아니라 같은 생각만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한다. 나에게 보이는 것이 전부 혹은 대세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와 다름'에 인색해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나 조차도 나만의 독단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지 두렵다. 나 자신도 이미 나와 동질적인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본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