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와 Let It Be

by 제성훈

불현듯 중학교 시절 한문 선생님의 말이 생각났다.

'仁者樂山 者樂水(인자요산 지자요수)'

"공자께서 하신 말씀은 마음에 새겨둘 만하지만, 이 문구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어진 사람이라고 모두 산을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꼭 그래야 하는 이유도 없는데 말이지."


당시 선생님이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니, 지금의 나보다 좀 더 어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분은 이 문구를 어떻게 해석할까?


옛 성현의 말씀을 부러 곡해할 필요는 없지만, 직접 그 뜻을 물을 수 없으니 제 멋대로 마음에 담아둘 수 있어 좋은 점도 있다. 내가 내리는 해석은 이러하다.


어질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는 삶이란 산처럼 굴곡이 있어, 숨이 넘어갈 듯 가쁜 길이 언제고 계속될까 지칠 때면 탁 트인 시야와 바람이 맞이하고, 내리막 편한 길에 자칫 방심하면 미끄러워 넘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 아닐까? 그래서 마음의 풍파를 피하고 오래도록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다.

(仁者樂山, 仁者壽)


반면, 지혜로운 자는 진리를 추구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더러운 진흙을 지나치면 탁해지고 자갈 사이를 지나면 맑아지는, 지당하고 거스르지 못하는 진리를 물이 품고 있기에 좋아하는 것 아닐까? 물과 같은 불가항력의 진리,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를 깨닫는데 희열을 느끼는 것 아닐까? 지금 당장은 아닌 것처럼 보여도 진리 혹은 순리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을 거대한 파도에서 느끼는지도 모른다.

(智者樂水, 智者動, 智者樂)


그런데 이 문구를 생각하다 보면 스피노자떠오른다. 우리에게는 '범신론'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의되는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 물론 그를 범신론자로 규정하는 것 자체에 이견이 많지만 말이다.


그가 쓴 당시의 글은 요즘으로 치면 선문답과 같아서 해설서의 도움을 빌었다.

"God produces them (people, trees, and rocks), but has no desires or goals, and so does not produce them in order to achieve anything. ... Thus the world has no purpose or direction."

(Charles Jarrett, [Spinoza, A Guide for the Perplexed], Continuum (2009), p36.)

말하자면, 신은 이 세상을 만들었지만 어떤 의도나 목적이 없다. 하지만 자기 결정권은 있다 (Self-Determining).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세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세상을 만들어냈지만 어떤 의도로 만든 것은 아니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소위 과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빅뱅에 의해 우주가 생겨났고 지금도 확장되어 나가는 것처럼, 은하나 행성 또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체를 만들 의도는 없었지만 그냥 그렇게 만들어지고, 소위 만유인력과 상대성이론처럼 그 나름의 원리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일까? 그 자체는 목적이 없지만 하나의 큰 수학공식처럼 스스로 풀어가고 있다는 말일까?


이과가 아닌 나는 이를 좀 더 문과적으로 확대 해석해본다.


내 의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내 의도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혹은 그분께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스피노자 그 자신의 대처 방법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의 선대는 종교 박해를 피해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로 이주했고, 그가 범신론적 해석을 내놓은 Ethics를 쓸 무렵에는 부모와 형제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일련의 불행이 지속되었던 삶. 이렇게 보면 인간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는 신을 그가 그려낸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는 신이 인간의 형상을 할 수 없으며 인간과 소통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신은 있지만 그는 하나의 원리와 같은 것이어서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낙담하고 멈추지 않았다.


신의 원리 안에서 세상은 만들어졌기에. 모든 것이 신의 일부/연장(Extension)이라 말한다. 즉 '나'는 신의 연장선에 있으니, '나는 신의 일부이고, 그래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자기 위안의 체계를 만들려 했던 것은 아닐까?


삶에 굴곡이 있음을 깨닫고 신에 의탁하고 기도하며 혹은 산(山)처럼 인고하며 살아가는 이가 있는 반면, 스피노자는 어쩌면 '범신론'이라는 물줄기를 찾아내고 그렇게 흘러가는 진리의 강을 바라보며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삶을 영위할 힘을 찾아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비틀즈의 노래 가사처럼, 순리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기 다짐 말이다.


스피노자처럼 멋진 수식어로 쌓아 올리든, 비틀즈 가사처럼 혹은 오랜 경험이 만든 진솔함이든,

소위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갖는 가치관 혹은 세계관이라는 것 내가 나의 삶을 인고하고 넘길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언젠가 답답한 퇴근길, 카스테레오에 Let It Be를 크게 틀어 목놓아 따라 부른 적이 있다.

삶의 고단함이야 이골이 날 정도로 겪고 있지만 그래도 결코 적응이 안되니 말이다.

그럴 때면 직장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내 생각에 비틀즈의 'Let it be'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해석해야 할 것 같아."


직장 생활 10년이 넘지 않던 당시에는 알듯 말듯했는데, 지금 그 선배가 똑같은 말을 한다면 '암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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