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니체

by 제성훈

요즈음 같은 시절에는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오는 직장인이어서 다행이지 싶다. '회사는 전쟁터지만, 나가면 지옥이다'라는 미생의 한 대목처럼 말이다. 프리랜서 하는 친구와 '그래도 네 처지가 낫다'며 서로 부러워하던 시절이 돌아오길 바란다.


그래도 직장이 전쟁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아니, 전투가 더 치열해졌다. 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일자리는 더 많이 줄어들고 있다. 기업이란 성장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사라지기 마련이니 점점 작아지는 시장과 구매력이 떨어져 가는 고객을 상대로 성장을 이어가려면, 말 그대로 뭐든 쥐어 짜내지 않으면 안 된다.


나 같은 내근직은 '보고서'가 일이고 무기이다. 매 번 보고서를 만들 때마다 새로운 인사이트를 반영해야 한다. 말 한 줄을 넣기 위해 며칠씩 수많은 데이터를 돌려본다. 그렇게 보고를 마치면 다음번에는 XX를 보고해보자는 지시가 내려온다. 보고의 주기도 더 짧아진다. 말 그대로 나의 조직을 계속 어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어려움을 헤쳐나가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지금의 희생엔 보상 따를 것이다.'


언제까지 이 거짓말 같은 구원과 보상의 메시지를 믿으며 살아야 할까. 다가오지 않는 미래를 위해 지금의 나를 강요해야 할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지금을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이 답답하다.


"도덕 (특히 기독교적인 도덕) 앞에서 삶은, 삶이 비도덕적인 까닭에 늘 어쩔 수 없이 부당한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니체, [비극의 탄생], 이진우 옮김, 책세상 (2005), p18~19)


일이 요구하는 성실함, 집중 혹은 열정 그도 아니면 효율성이라는 도덕 앞에, 게으르고 나약하며 자유로운 우리의 영혼은 통제당하는 것이 아닐까? '일의 성과가 인격'이라는 말이 거리낌 없이 뱉지는 전쟁터에서 말이다.


불합리함을 인식하더라도 우린 꼼짝없이 사무실 책상 컴퓨터에 붙들려 있을 것이다. 마치 (니체가 말한 이성 혹은 기독교적 순종을 상징하는) 아폴론적인 '밝은 빛(성과)' 앞에 적나라하게 감시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밤과 꿈속 무의식 세계를 말한다. 조직 혹은 사회가 요구하는 억압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갈망을 꿈꿀 수 있는 건 오롯이 혼자일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평가의 잣대에 갇힌 '생각하는 방식'을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는 건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난 꿈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 갈망하는 것을 찾아내고 부러 입 밖으로 뱉어낼 수 있는 능력. 그것이야 말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나만의 디오니소스를 불러올 자신이 있는가?


'탐욕스러운 의지는 사물 위에 펼쳐진 환상으로 피조물을 삶에 얽매이게 한다.'

(비극의 탄생, 상동 p135)


무슨 소리일까?


열심히 일해 인정을 받고, 높은 성과로 오래도록 버티며 살아남는다. 이를 나와 가족을 위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며 가정을 꾸린 대가이자 의무로 받아들인다. 가정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간 아버지 혹은 어머니로 인정받기를 갈구한다. 그렇게 삶에 대한 희생을 스스로에게 강제한다.


버리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란 뜻일까? 헷갈린다. 하지만 가정을 소홀히 하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니체는 말한다. 예술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예술 그 자체로 살아가야 한다고. 조각가가 돌을 쪼아 멋진 인체상을 만드는 것은 삶의 나쁜 면을 다 날려버리고 장밋빛 메시지만 남기는 행위와 같다고. 남이 보기에 그럴싸한 성과를 만들기 위해 삶의 많은 부분을 쪼아 부서뜨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살아가란 뜻일까?


죽어라 몸부림치고 갈구해도 얻을 수 없고, 아무리 피하려 발버둥 치고 악을 써도 막지 못하는 삶의 '어쩔 수 없는' 비극 앞에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 묻고 있다. 구원의 약속 (가령 멋진 아버지라는 인정)을 믿고 지금의 나를 희생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큰 비극이 아닐까 하는 물음을 니체는 던진다.


유한한 (시간이나 능력 모두에서 말이다) 삶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조우한 모든 것들을 무엇하나 버리지 않고 사랑하자는 의미 아닐까? 어떤 목적 때문에 생을 가려버리지 말자는 의미로 말이다. 그렇게 해석하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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