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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Feb 28. 2018

이런 엄마-3

공감을 책으로 배우려 했던 이런 엄마

첫째가 둘째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너무 일찍 동생이 생긴 첫째는 잠자리에서 동생과 엄마 자리 쟁탈전을 벌이곤 했다. 엄마 아빠가 한 아이씩 데리고 잘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이들 아빠가 출장이 잦아서 그런지 잠자리에서 만큼은 엄마만 찾으니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니었다. 그날 역시 내가 가운데 눕고 양쪽으로 아이들을 재우려고 해봤지만 엄마를 독차지하고 싶었던 건지 반쪽 자리가 너무 부족하게 생각되었던 건지 첫째는 알 수 없는 짜증과 함께 울음 떼를 부리고 있었다. 이건 평소 아이가 보이는 짜증과 달랐다. 점점 시간이 길어지고 아이와의 실랑이가 지쳐갈 때쯤 난 이 아이의 마음을 진정 제대로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마음 읽어주기가 아니다. 진짜 궁금하다 도대체 뭐냐. 너 정말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힘든 거니. “동생이 엄마 자리를 차지하는 게 그렇게 싫어?” “잠자리에 드는 게 무섭고 불안해? “ ”네 자리가 너무 좁아 보여? “ ”엄마한테 네가 올 자리가 없는 것 같아 화나?

아이가 멈칫한다. 나도 같이 멈칫하다가 문득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엄마한테 화난 거야?” “엄마가 너만의 엄마가 아닌 게 싫고 미워?” 울음소리를 그친 아이가 나를 쳐다보며 정말 서러운 눈물을 흘린다.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엄마가 온전히 자신만의 엄마로 남아주지 않은 게 화가 나는 거였다. 그동안 유독 아이가 동생을 밀치고 때리는 행동을 보였던 것도 동생이 미운 게 아니었다. 엄마에 대한 미움, 자기 자리에 대한 불안함과 슬픔의 결정체였던 거다. 첫째의 눈물은 용암처럼 뜨거워서 내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겼다.




내가 알게 된 공감은 짐작한 것을 읊조리는 것을 넘어 온전히 아이만이 느끼는 감정을 알아주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의 감정에 잘 공감하고 있으며 마음 읽어주기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지적 상황에서 화가 났다는 것만 알고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지는 못했던 것이다. 무엇에 대해 얼마나 화가 났고 그것이 이 아이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가 하는 핵심감정까지 알지는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공감이라는 단어의 깊이와 무게가 느껴졌다.

그리고 연년생, 아니 연년생이 아니더라도 형제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정말 신중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울도 그렇고, 둘째를 본 직후 첫째의 마음을 진심으로 안쓰러워 할 줄 알아야 했다. 아이가 엄마인 나를 그렇게까지 자신의 모든것이라고 느낄줄은 몰랐다. 고맙고도 미안했고, 또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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