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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곰 Aug 13. 2019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만 꾸는 까닭은

스스로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당신이 만드는 것은 모두 당신 스스로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당신이 만드는 것은 모두 당신이 남기는 유산이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당신을 기억할 것이다. (에번 카마이클, <한 단어의 힘> p.319)




병아리처럼 빨간 입술을 바르고 첫 출근을 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은데, 나는 어느새 십여 년 차의 “묵은지” 직원이 되었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직장인의 모습을 몇 개나 갖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의 나는 남들과 똑같이 월급이 입금됨과 동시에 추억이 되고, 동료들과 직장상사를 잘근잘근 발골 작업을 하기도 하고, 회식 자리에서는 몸에 좋지도 않은 술을 받으면서 억지로 해사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를외치는 씩씩한 대한민국의 노동자가 되어있다. 그럼에도 나는 늘 내일의 나를 그리며 산다. 언제인가는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세상에 내놓는 꿈을 꾸고, 내 아이가 내 책을 읽고 엄지 손가락을 척 드는 꿈을 꾼다. 


며칠 전, 엄마 생신이라 언니와 형부, 사촌오빠와 이모까지 모두 우리 집에 모였다. 집은 금요일 낮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내내 소란스러웠는데, 우연히 나의 브런치 연재가 이야기 나왔다. 사촌오빠는 언제인가는 내 글을 쓸 거라고 생각했다며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냈고, 알고 보니 언니는 내 블로그를 구독 중이었다. 내 기분이 어땠냐고?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좋아요”를눌러주는 것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어떤 이들은 가족들에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하냐며, 글 쓰는 것을 질타받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이 되기도 했다. (어느새 글을 쓰지 않으면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것을 가족에게도 들켜야 한다는 기분이랄까.)







어쩌면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글쟁이”를 목표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들 중 대다수가 나처럼 그저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을 테고.) 활동하시는 글쟁이들 중에는 꿈을 이룬 사람도 있을 테고, 전혀 꿈과 상관없지만 천부적인 재주로 글쟁이가 된 사람도, 또 돈벌이를 위해 글쟁이가 된 사람도, 스스로는 어중이떠중이인 것을 알면서도 글쟁이 인척 살아가는 사람도 많을 테다. 예전에는 그런 것들이 모두 신경 쓰였다. 글로 밥을 먹고사는 이들을 진심으로 부러워하며 책상에 처박혀 글을 써본 적도 있고,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으로 글 같지 않은 글로 출판을 하는 이들을 비웃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어느새 그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은 “어른”이 되어있다. 그저 나의 꿈은 나 혼자 꾸는 것이고, 내가 누군가의 꿈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글을 평가하고 점수 줄 자격도 없음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알게 되었다. 정작 무엇인가를 점수 내고 결론 낼 사람은 스스로임을 알아가는 것이다. 


내 이름 석자가 찍힌 책을 만드는 것이 꿈인지 아는 내 친구들은 종종 나에게 까짓 거 한 권쯤 출판해보면 어떠냐고 묻는다. 출판 하자는 출판사가 없으면 독립출판이라도 하면 망해봐야 출판비 정도 말아먹는 건데 꿈에 비해 적은 액수가 아니냐고. 물론 그 액수만으로 따지면 30년 가까이 품어온 꿈에 비해 적은 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이 나 스스로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글인지 생각해보면,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다. 또 너무 오래 꾸어온 꿈이라 그렇게 아무도 읽지 않을 책을 만드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다소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어느새 출판이 아니라, 제대로 된 글 한편, 딱한 줄이라도 제대로 된 글을 쓰는 것이 꿈으로 바뀌어 간다. 딱 한 명이라고 할 지라도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전환점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되리라는 생각으로 바뀌어간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 이 생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남기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작은 다짐일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 부끄러운 글은 쓰지 말자고, 혹여 먼 훗날- 내가 정말 글로서 밥을 먹고사는 사람이 된다면 그때에도, 또 그렇지 못하고 지금처럼 살더라도 절대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글은 쓰지 말자고 나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언제인가 내가 한 책의 리뷰에 쓴 말처럼, 나를 나타내는 수식어는 내 이름 석자면 충분할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진실한 나를 기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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