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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곰 Sep 25. 2019

찌질한 것과 구질구질한 것의 차이.  

'준희'는 사랑했으나, '현우'는 사랑할 수 없는 나란 사람. 

반했나? 웃게 해 줄게. 지금처럼. 진짜 반하게 해 줄게. - 종우의 말


가진 게 많으면 더 가지고 싶겠지만, 난 강력한 한 두 개만 있으면 되는데. 나한테 그런 사람이야. 

적어도 나한텐 설명 불가능한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사람. - 현우의 말






사실 "유열의 음악 앨범"이란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부터 나는 이 영화를 꼭 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영화를 너무 보고 싶어 하다 보니 우리 사무실에서는 단체관람을 하자며 우스갯소리까지 했고, 내 친구 하나는 그 영화 별로 안 볼 거 같으니 평일에 반차 써서 영화관 빌린 것처럼 둘이서 보자며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원래 소문난 잔치집에 먹을 것 없다고 하더니 정말 많은 사람과 볼 것 같았던 이 영화를, 이런저런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막을 내리기 전에 영화관에 가지 못하게 되었고, 올레 tv에 뜨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어제, 알림음과 함께 정해인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7일감상권이 훨씬 저렴했지만 여러 번 보겠다는 욕심에 평생 소장권을 구매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내가 이 영화를 다시 감상할 날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일단 제목에 비해 감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이야기를 간추려 "자 이렇게 우리의 사랑은 엇갈리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해피앤딩이란다."로 현우가 이야기하는 것인가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것도 지극히 현우의 입장에서 간추려진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어느 역할도 제대로 몰입되는 역이 없었다. 일단 현우는 나이를 먹어가도 똑같이 친구들에게 휘둘리고, 한심하게 사는 멍청이 같았다. 후에는 제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끝까지 '후진'느낌이 가득한 캐릭터였다. 그 차를 따라 뛸 때, 영화를 끌지 말지 고민했다. 두 번째로는 미수. 어딘지 음침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느낌은 좋았다. 그러나 그냥 현우에게만 맞추어 그냥 되는대로 사는 느낌이 들었달까. 특히 은자 언니가 나쁜 놈이랑 산다며 한심해하는 장면에서는 "너의 미래가 그거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바보가, 같은 길을 앞서 걸은 이에게 충고하는 느낌이었을까.  종우는 꽤 멋있는 캐릭터로 콘셉트를 잡았는데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느낌이었다. 더 순정파로 사랑을 구애하거나 더 나쁜 놈으로 역할을 했으면 보다 매력적인 캐릭터 터였을 텐데, 왠지 편집의 희생양이 된 느낌이랄까. 아무튼 "밥누나"에서 <서준희>가 너무 좋아 이 영화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나의 <정해인 앓이>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 


영화 욕이나 하자고 시작한 글은 아니었는데.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준희"는 사랑하지만 "현우"는 사랑할 수 없는 나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솔직히 말하자면 현우의 캐릭터는 찌질을 넘어서서 <구질구질>했다. 일단 캐릭터를 보자. 부모님은 안 계시고 고모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실수로 친구를 죽게 했고, 그로 인해 소년원을 다녀왔다. 출소 후에도 계속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사고를 쳐서 여러 번 미수를 울린다. 늦은 검정고시와 대학으로 인해 취업도 늦었고 현실상 빨간 중이 있기에 제대로 된 자리에 취업을 할 수 없다. 미수가 살던 단칸방에 살고, 직장이랍시고 구한 곳은 건물주의 요청으로 문을 닫아야 한다. 돈벌이는 여자 친구의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방송국 아르바이트가 전부다. 그런데도 치기 심에 그 친구들과 계속 연을 이어가고, 본인을 위해 죽은 친구 집을 찾아갔던 미수에게 화를 낸다. 늘 미수를 기다리게 하고 불안하게 해 놓고도, 다른 남자랑 차를 타고 가는 미수를 잡으려고 도로를 마구 달린다. 미수가 뛰지 말라고 하면 곧바로 안 뛸 거면서 말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비록 부족하지만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매달리고 부탁하는 것은 "찌질남"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대로 귀여운 맛이 있다. 하지만 현우는 찌질남이 아니다. 본인의 어두움에 미수도 끌어넣고, 본인을 위해 미수의 꿈도 좌절시키는 "구질구질남"이다. 멘트부터 그렇다. 아무것도 가진 거 없고,  너 하나 가졌다. 이 말은 사실 달콤해 보이는 감옥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무거웠다. 현실도 구질구질한 게 많은데 왜 영화까지 이렇게 구질구질할까. 왜 이렇게 답답한 놈들이 세상에 많은 걸까 하며 그만 보고 싶었다. 적어도 영화에서라도 이상한 사람들과 만날까 마음 졸이는 사람 말고, 사고 칠까 두려운 사람 말고,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돈 벌러 가야 되는 사람 말고 진짜 반하게 해 준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뭐든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준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람답게 살고 쉼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종우 (현우가 쫓겨난 그 건물주이자 미수네 회사 대표님)를 만나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나이를 먹은 탓일까. 


오래전 나에게도 그런 선택의 시간들이 있었을 텐데, 그때는 나도 몰랐던 수많은 것들이 너무 눈에 보여서 가슴 아프고 힘겨웠다. 만약 내게 다시 무엇인가를 선택할 기회가 온다면 그때 나는 같은 결정을 할지에 대해 나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미수가 결국 현우에게로 가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이 영화를 해피앤딩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당신들이여. 만약 당신이 미수라면 정말 이게 해피앤딩일까? 차라리 건축학개론에서처럼 종우와 결혼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현우를 종종 그리워하는 것이 더 해피앤딩은 아니었을까? 

 






사랑 하나면 결혼해서 어떻게든 밥 먹고 사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결혼은 정말 현실이었다.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남편과 맞추어야 하고, 평생 남으로 살아왔던 이들이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된다. 또 시누이나 도련님 등 호칭도 어색한 부수적인 것들도 많이 생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남편에게 "따라온" 이들로 인해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랑하나면 괜찮을 것 같았던 인생은 돈에, 가족에, 직장에, 습관에 발목 잡혀 금방 백기라도 흔들고 싶어 진다. 나도 그렇고 내 주변에도 그렇고, 분명 사랑이었을 시작은 사라지고 구질구질한 현실만 눈 앞에 펼쳐진 이들이 너무 많다. 


물론 돈이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돈이 없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고. 그러나 내가 똑같은 정해인이 연기하고, 찌질의 요소들을 많이 안고 있는 "준희"는 사랑했으나 "현우"는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돈이 아니다. 마음의 차이다. 준희는 말했다. "해주는 게 아니라 하는 거"라고. 준희는 진아를 위해 무엇이든 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가진 한도 내에서만큼은, 없는 용기라도 쥐어짜서 했다. 하지만 현우는 말한다. 본인은 가진 게 없어서 다른 게 욕심나지도 않고,  강력하게 한두 개, 너만 있으면 된다고. 이 말이 달콤한 감옥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미 발전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가진 게 없어도 된다니. 그것은 본인만의 생각이다. 결혼에도 육아에도 돈이 든다. 그런데 가진 게 없어서 가지고 싶은 게 없다는 말은 중고등학생들의 풋ㅎ 사랑에나 어울릴 말이다. 몇 번을 헤어지고 다시 만난 사이에 할 말은 아니란 거다. 또 표현도 불가능할 만큼 위대한 사람이라는 말도 곰곰이 뜯어보면 미수가 자신을 끌어가야 한다는 책임회피의 말이다. 그래서 나는 준희는 사랑했으나, 현우는 사랑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웃게 해 준다는, 행복하게 해 준다는 종우의 손을 번쩍 들어주고 싶다. 


당신의 사랑에게 묻는다. 정말 사랑 하나로 다 괜찮은 건지. 

당신의 오늘은 해피앤딩이었는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을 먼저 바꾸어보자. "해주는 게 아니라 하는 것"으로.  그렇게 한참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손을 털고 일어나는 편이 당신을 위해 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우의 사랑이 해피앤딩이라고 믿는 당신이 부럽다. 그 순수한 마음이, 그 순수한 사랑이 정말 눈물이 나도록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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