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소도시이기는 하나, 지난 몇 년간 나는 2 주택자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쩌다 보니 그랬다. 오늘, 나의 첫 번째 집이자 신혼집이었던 집이 팔렸고 가계약금을 받았다. 묘한 기분이 들 것 같았는데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고도 나는 그저 덤덤했다. 차 때고 포 때고, 아마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산기를 굴렸으리라.
운이 좋게도 나는 한 번도 월세나 전세살이를 하지 않았다. 물론 시골이기에 가능했겠지만 시골이라도 친구들 대부분은 전세 혹은 반전세로 시작했고, 혹여 자가로 시작하더라도 집의 대부분이 사실은 은행의 것인 상태로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운이 좋았다는 말이 맞다. 서울살이를 하는 언니가 서울로 이사를 와도 '변두리'에는 허름한 자가가 가능할 거라는 농담을 하는 걸로도 운이 좋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나의 첫 집은 선시공 후분양 아파트였는데, 처음 집안에 들어섰을 때 기억이 분명하다. 살림살이가 들어오고, 신혼살림을 시작한 것보다 집의 첫날이 기억에 남는 거보면 나도 꽤 설레는 일이기는 했나 보다. 아무튼 우드톤이 가득한 그 집에 내리쬐는 햇살은 꼭 내 앞날이 그렇게 환할 것 같다는 착각이 들만큼 환했다. 돌아보면 그 집에서 나름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맞벌이를 하며 매달 몇백만 원의 적금을 넣었고, 차도 총 세 대를 샀다. (남편의 차를 바꾸었고, 내 차를 바꾼 지 2년 만에 동생에게 내 차를 주게 되어, 다시 사는 바람에 3대)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손에 꼽을 일은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아이를 낳았다.
그 집은 사실 살기에 참 좋은 집이었다. 도보 3분 거리에 대형마트 2개가 있었고, 도보 5분 거리에 대형병원과 먹자골목이 있었다. 내가 직접 탈 일은 없었으나 아파트 바로 앞에는 버스정류장과 택시 승강장이 있어 대중교통도 원활한 편이었다. 아이를 가지고 나서야 그 집의 단점 하나를 발견했는데, 바로 학교였다. 물론 아주 먼 일이었으나, 학교를 가려면 아이가 6차선 도로를 건너 다시 두 블록을 걸어야 했다. 아이를 낳기 5일 전까지 출근을 하고, 워킹맘을 하리라 마음먹은 내게 그 길은 위험천만해 보였다. 임산부의 급격한 마음 변화에 맞장구라도 치듯 내가 사는 지역에 혁신도시가 들어서게 되었고, 충동적으로 그 동네 구경을 갔다가 초등학교와 가장 거리가 가까운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모델하우스 방문과 분양계약서 작성은 딱 30시간 정도의 시차를 가지고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게 이사한 '초품아' 아파트는 다행히 몇 억이 올랐으나, 원래 살던 "환한 빛의 집"은 그렇게 환하지 못했다. 첫 번째 팔 마음을 먹었을 때 팔았더라면 그래도 몇 천의 이득은 봤을 것을, 임신한 상태로 두 번 이사할 엄두가 나지 않아 (그때 팔았더라면 6개월 정도 월세를 살아야 했다.) 포기를 했다. 그 후 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매매 대신 전세를 택했고, 그렇게 두 바퀴가 돌았다. 지난 몇 달은 매매를 목적으로 그 집이 비어있었다. 전세와 월세는 매일매일 문의가 오는데, 매매는 띄엄띄엄 천만 원 이상을 깎아달라는 사람들만 오던 터였다.
그런데 팔리려니 내가 그랬던 것처럼 딱 이틀 만에 팔렸다. 어제 집을 구경하시고, 오늘 밥을 드시기도 전에 집을 사고 싶다고 하셨단다. '시세대로'팔아달라는 내 요청대로 부동산 사장님은 '동네 평균가'를 제시했고, 사시는 분도 큰 흥정 없이 가계약금을 입금하셨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집은 곧 남의 집이 될 예정이다.
남는 것은 크게 없다. 다만 2회 차 재산세는 고지서 하나가 줄어들 테고, 몇 달간 나가던 그 아파트의 관리비가 나가지 않겠지. 그 홀가분함과 덤덤함 뒤에 오는 여러 생각들로 괜히 기분이 이상하다. 그 집으로 매수인도, 전셋집 주인도, 반전세집주인도, 이제는 매도인도 돼본다. 나의 첫 집이었고, 신혼집이었고, 우리 아이가 태어난 그 집이 이제는 더 이상 내 집이 아니다. 꼭 하루 만에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솔직히 매수도, 전세도, 월세도, 매도도 아빠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어른이 된 것은 착각을 하는 내가 웃기다. 아빠가 들으면 "아이고 다 컸네~"하며 피식 웃을 지경이다.
모르겠다. 이 기분이 뭔지.
다만 퇴근 후 그 집으로 돌아갈 때 참 행복했구나, 그 집의 거실 바닥에 누워 햇빛을 받을 때 나는 고양이처럼 느긋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