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시련(암흑기)
3살 때 한글을 스스로 깨친 이후
아이의 호기심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한 열망이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했다.
스스로 책을 꺼내서 읽고,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외가에서도 첫 번째 외손주
우리 집안에서도 4대 독자이자 첫째...
비교 대상이 없다 보니
우리는 그냥 조금 영특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져다준 노트북으로
한글창을 뛰어놓고
숫자키보드를 누르면서
숫자 1부터 만까지 숫자를 화면에
쳐 내려가는 놀이를 혼자서 했다.
언어뿐 아니라 수의 개념에도 관심이 있고,
확실히 다른 아이들에 빠르긴
빠르구나 정도로 생각을 했다.
아이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아이가 태어나고 3년째 되던 해에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주말 부부를 하면서,
장인, 장모님과 아내와 분업과 협업이
자리를 잡았던 안정기에 벌어진 일이다.
아이는 3살이 되던 해에
많은 것을 잃었다.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해 주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헤어지고,
익숙한 환경을 떠나고,
갑자기 2살 터울의 여동생이 태어난 것이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이라는 존재를 인지하는 스트레스가,
내 배우자가 다른 이성을 집으로 데려와
오늘부터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라고 하는 것 정도의
스트레스라고 한다.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 첫 외손주, 첫 친손주
집안에서 처음 태어나 모든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던 첫째에게
너무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하물며
낯선 환경으로 이사를 하고
같이 살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없고,
갑자기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으니
미루어 짐작도 잘 되지 않는다.
둘을 케어하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는 어린이집을 더 일찍 가야 했다.
스트레스가 하나 더 늘어난 꼴이다.
친구들하고도 사이좋게 지내야 하다니...
이때가 우리 아이의 암흑기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힘든 시기에 더 힘든 어린이집
선생님을 만났다.
가, 나, 다, 라를 가르치는 교실에
이미 세 살에 한글을 스스로 떼고
글을 읽고 쓰는 애가 있으니...
별로 달가울 리가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호기심이 동하면 만져보고
물어봐야 속이 풀리는 아이.
낮잠을 자지 않아 다른 친구가
잠들지 못하게 하는 아이.
아이가 잠든 후에 업무를 해야 하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눈에는
아이가 어떻게 보였을까...
이틀에 한번 꼴로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고,
그때마다 아내는 사과를 하고,
이 당시의 아내를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배우는 내용을
알아도 모르는 척하라는 엄마의 말을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너 다 안다고 떠들지 말고,
책 갖고 뒤에 가서 서 있어"
"난 책 좋아하니까 좋아요"
어린이집 교사도
우리 아이도...
서로 괴로웠던 시기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내가 고르고 고른 정제된 말로
편지를 썼었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하루에 한 번만 칭찬을 부탁드린다.
어린이집 학부모 방문의 날이었다.
원생들이 한 명씩 일어나 자기소개를 한다.
"저는 00을 잘하는 000입니다"
우리 아이의 자기소개는 정확이 이랬다
"저는 정리정돈을 잘하는 000입니다"
나중에 알았다.
어느 날 친구의 필통 정리를 도와주고 있는데,
선생님이 "00는 정리정돈을 잘하는구나"라고 말했다고.
매일 혼만 나다가 칭찬을 받았나 보다.
"정리정돈을 잘하는 000입니다"라는 자기소개는
그 이후로도 상당히 긴 시간 사용되었다.
우리 부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뛰어놀 수 있는
어린이 집이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지 못한 이유는
언젠가 적응을 해야 하는데...
돌고 돌아 다시 적응을 해야 하는 시간이 더 길어질까 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