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
물리학의 모든 법칙은 간단한 관찰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환경부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제는 동물과의 공존을 지구적 관점에서 모색하는 동물청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폴리스에 살면서 정치에 참여할 때만이 우리는 인간으로서 본성을 충분히 발현한다.
'결코 너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 싸움을 계속하라'
운명과 심성은 하나의 개념에 붙여진 두 개의 이름이다.
낡아서 삐걱되는 것이지만 온전한 내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모든 걸 잃는다고 해도 늘 내것으로 남아있는.
“그러다가 갑자기 번쩍하면서 모든 게 다 이해되죠. 며칠 동안의 노력이 모두 쓸모없어 보였는데 예기치 못한 순간에 결실이 맺혀요.”
따라서 후회는 하되 후회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이성의 날을 세 워야 한다. 오늘 내린 어떤 의사결정이 혹시 당신의 삶 속에서 누적된 후회의 경험들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검토하는 습관이 필요할 듯 싶다.
경쟁은 발견의 원동력이다. 다우드나는 경쟁을 가리켜 '엔진을 점화시키는 불꽃'이라 불렀고, 아닌 게 아니라 그 자신에게는 분명 그렇게 작용했다.
조금씩 더 진전하는 노력이 모이면 새로운 차원의 신세계가 열린다.
명심해야 해. 그들을 태워버리지 않으면, 그들이 널 태워버릴 거야.
어느 쪽으로 눈을 돌리든 생명의 과정을 묘사하려면 기운빠지게 하는 은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다른 누구도 돌볼 수 없다.
사람에게 친숙하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우나 컴퓨터에게 작업을 지시할 수 있는 언어를 저급(low level language)라고 한다
그날 그 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것은 어른의 얼굴이었고, 연구가나 예술가의 얼굴이었다.
국제관계에서 문명의 진보는 힘에서 외교로 외교에서 법으로 이동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려는 것, 난 그것을 살아 보려 했을 뿐이다.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거울 속에는 원래 내 모습 대한 너 친구이자 지도자였던 데미안의 모습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녹지 문제는 자연스럽게 대기 질로 연결하게 된다
한 사람의 죽음은 이 드넓은 우주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살아있는 오늘도,눈을 감는 내일도 태양은 변함없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그 중 어떤 노래도 기록되지 않았다. 그의 노래들은 바람이 부는 것처럼 아무 해를 끼침 없이, 그리고 어떤 책임감을 느낌도 없이, 이 세상에 와서 존재하다가 사라져갔다.
이무리 오래 사귄 친구이더라도 그의 마음은 나의 눈동자보다 더 약하다 것을 알아야한다.
적어도 당신만큼은 과거의 당신을 옹호하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눈을 감았는데도 눈앞에서 빙글빙글 도는 아데닌 잔기쌍 때문에 두 시간이 넘도로 정신이 말똥말똥 했다.
우울체가 그녀의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주는가?
훌륭한 기술이 있더라도 그것을 소유할수 있는사람이 일부뿐이라면 그 기술은 결국 보편의 해결책이 될수 없다
지식은 아주 작은 공간의 심오한 구조 속에, 시간의 특성 속에, 블랙홀의 운명 속에, 그리고 우리 생각의 기능 속에 있습니다.
조각하려면 손기술이 필요할 것 같지만, 분자 조각가들은 손으로 조각하지 않는다. 화학지식으로 조각한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날 자격이 있다거나 애초부터 사회에서 유리한 출발선에 설 자격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총칼로 벌이는 전쟁이 아니라 기술, 생산성, 품질로 싸우는 경제 전쟁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고요한 휴식에서 깨어나면 우리는 고되고 절망스러운 현실 세계로 다시 돌아와 오랜 시간 고통받는다.
현재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잘 알아야하고, 그것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야만 한다.
흔히 지나다니는 흙에서 이런 귀중한 약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자연의 신비다. 자연은 위대한 화학자다.
어떤 짐승이나 사람이 자신의 모든 주의력과 모든 의지를 어떤 특정한 일로 향하게 하면 그는 그것에 도달하기도 하지, 그게 전부야.
사람들은 그 물질들을 탐하고 활용하고 남용하기도 함으로써 역사는 크게 움직여왔다
무구한 신뢰심은 죄인가?
세상에 거저 되는 일은 하나도 없으며, 성공에는 그만큼의 노력이 뒤따른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난 원자폭탄 꼭대기에 매달려 갈 거다. 그 일에 자원할 것이다.
그들이 산아 제한을 행하는 것은 집단이 이용할 자원의 고갈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가 낳은 새끼들 중 살아남는 새끼 수를 최대화하기 위해 산아 제한을 실행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고유의 비밀과 보물을 간직하고, 저마다 고뇌할 이유가 있고, 저마다 승리의 기준을 지닌 하나의 우주로 봐야 한다.
보다 우수한 차원에서 최하층의 상태를 경험해 보고 원래의 차원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은 진보를 이루어 내는 하나의 훌륭한 방법이다.
마음의 평온이 하루를 더 의미 있게 만듭니다.
많은 투자를 해서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 높이 띄웠지만 착륙할 활주로가 국내에 없는 셈입니다.
오, 잔인하고 부질없는 오해여! 오, 저 사랑이 가득한 품 안을 떠나 제멋대로 고집을 부리며 지내온 유랑의 삶이여! 진 냄새가 배어 있는 두 줄기 눈물이 그의 코 양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잘되었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남보다 감정적인 뇌를 가졌다는 사실은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은 인생에 자극과 묘미를 더해준다
과거의 나만 믿었다, 미래의 나만을 믿어왔다. 고작 현재의 나는 믿지 못하지만 말이야.
우리는 삶을 레이스로 생각합니다
일단 당의 손아귀에 들어가기만 하면, 느끼는 것과 느끼지 못하는 것, 행동하는 것과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그야말로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개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물론, 그 존재와 행적까지도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만일 거울상으로 이루어진 우주에서 한 외계인이 지구로 온다면 이 외계인은 자신의 효소로 우리의 음식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굶어 죽을게 틀림없다.
내가 저런 구름이었다면, 그러면 우리는 저 하늘에서 숲과 마을과 도시들 위로 아름다운 배처럼 항해를 할 텐데. (...) 배를 본 적 있니?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서 숲 속으로 들어가면, 왼편에 외나무다리가 걸려 있는 연못 속이에요. 빨리 아기를 붙잡으세요. 가라앉지 않으려고 아직도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어요.
세상의 모든 대담한 씨앗들처럼 나도 상황이 닥치면 그때그때 거기 맞는 해결책을 찾아가며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멍 때릴'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키메라 장기를 다시 환자 본인에게 이식할 경우, 이론적으로 면역 거부반응이 일어날 확률은 0%가 된다.
남들하고 다른 사람은 외롭기 마련이에요. 사람들은 냉혹하니까요.
그 환상의 힘은 그녀를 초월하였으며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결국 달보다 약간 큰 두더지 행성이 생기는 거지요.
내가 만나본 사람들 가운데 일론만큼 크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는 어주 높은 목표를 세우고, 놀라운 속도로 그 목표을 달성해 냅니다
많은 공학 문제가 지식을 통해 해결될 때 재미를 느꼈다. 고등학교 시덜 그저 진학을 위해 배웠던 수학이나 기초과학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내 머릿속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병이라는 것이 인생의 큰 불행임을 알았다. 단지 그것뿐이었었다. 그러므로 그의 인생이라는 것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이 하나하나 떨어진, 그리고 생리적인 인생을 의미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군산으로 와서 있으면서 비로소 조금 분간 있이 인생을 보게 되었다.
소 떼와 힘센 작은 가축 떼는 약탈해올 수가 있지만, 세발솥과 말들의 밤색 머리는 사올 수가 있지만, 사람의 목숨은 한번 이빨 울타리 밖으로 나가고 나면 약탈할 수도 구할 수도 없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법이오
푸짐하게 차려서 함께 나눠먹던 가족의 식탁은 이제 인터넷 '먹방'을 지켜보며 혼자서 가정식 대체식품을 데워 먹는 풍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전쟁을 원하는 겁니까?
허나 만일 평화를 원한다면, 여기 최후통첩을 알려줄 테니 참고하시기를.
결국 인생이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개척해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정신없이 빨려드는 사진은 풍경사진이나 인물사진이 아니라 보도사진이다. 역사의 한순간이 한 컷의 이미지에 응축된 그 강렬함이 좋다.
"그레고르에게 가 보겠어요. 누가 뭐라 해도 그 애는 불쌍한 내 아들이에요. 가 봐야 되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말리는 거예요?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