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버카스텔 & 카웨코 & 크로스 …
학창 시절에는 하이테크를 좋아했습니다. 더 어릴 땐 동네 문구점에서 파는 삼천 원짜리나 오천 원짜리 비싼 샤프를 사서 썼죠. 중학생 때부터 갖고 싶어 했던 볼펜을 스물여덟 살에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펜을 비롯한 문구류에 관심 많은 건 아주 어릴 때 시작됐습니다.
이번 화에서는 펜에 초점을 맞춰 말씀드리겠습니다.
십 년 전에 생일 선물로 받은 파커 브랜드 만년필입니다. 얼마 안 가 망가져서 못 쓰게 됐습니다.
여러 시를 옮겨 적었습니다. 만년필로 글을 쓰는 데 익숙해지기 전에 망가져서 아쉽습니다.
사실 전 만년필 본연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만년필 스타일이라 해야 할까요. 몇 십만 원짜리, 몇 백만 원짜리를 봐도 디자인이 별로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꽤 괜찮은 만년필을 사면 관리를 잘해야 하고, 꾸준히 써 줘야 하고, 그에 맞는 종이를 써야 합니다. 전 그렇게까지 하는 걸 원하지 않았으며, 신경 쓸 거리를 굳이 더 늘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이천십오 년 말에 산 라미 알스타 만년필입니다. 이천이십 년에 망가졌습니다.
다른 건 크게 상관없는데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한번 글을 쓰면 삼십 분이건 한 시간이건 만년필에서 손을 떼지 않고 쓰는지라 땀이 나곤 했고, 그러면 손잡이 재질 때문에 미끄러졌습니다. 흐름이 끊기는 게 싫었지만 하는 수 없이 손과 만년필을 닦고 다시 써야 했죠.
이 로고에 있는 만년필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라미 이후로 만년필을 안 씁니다.
이천십칠 년에 찍은 사진입니다. 다 쓴 카트리지가 삼 년치 더 있습니다.
편하게 쓸 볼펜은 제트스트림 0.7mm를 쓰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써 봤지만 이게 저와 잘 맞았습니다.
라미 사파리 볼펜입니다. 쓸 때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답답하고 부담되기에 잘 안 쓰게 됩니다. 글을 빨리 쓰기 어렵다고 해야 할까요. 손에 땀이 많이 나시는 분들껜 불편할 수 있습니다.
카웨코 스포츠 클래식 볼펜(클래식 코랄)입니다. 선물하려고 검색하다가 알게 된 볼펜이에요. 작지만 손에 쥘 때 불편한 감은 전혀 없습니다. 무게가 굉장히 가볍고 여러모로 부담 없이 쓰기에 좋습니다. 필기감도 나름 괜찮은 편이구요. 보기만 해도 예쁘고 장난감 같은 귀여운 매력이 있습니다.
카웨코 스포츠 클래식 볼펜(스카이 그레이)입니다.
크로스 클래식 센추리 러스크롬 볼펜입니다. 이름 참 길고 어렵네요. 다이어리에 쓰려고 샀습니다. 다이어리에 껴 두기 위해서 가는 제품으로 찾다가 추천받아서 사게 됐죠. 너무 가늘어서 적응이 안 되고 살짝 미끄러운 느낌이 있긴 하지만, 필기감이 매우 좋습니다. 볼펜은 이것처럼 트위스트 방식으로 된 걸 좋아합니다(트위스트식 볼펜은 옆으로 비틀면 심이 나오고 노크식 볼펜은 버튼을 누르면 심이 나옵니다).
크로스 볼펜을 껴 뒀던 다이어리입니다.
파버카스텔 온도로 스모크 우드 볼펜입니다. 제 인생 볼펜이죠. 중학생인가 고등학생 때부터 눈여겨봤지만 살 엄두를 내지 못했던... 그러다가 이천이십 년 삼월쯤에 샀습니다. 공들여 글씨를 써야 하는 특별한 순간에만 씁니다. 무게감이 적당히 있으며 필기감도 나쁘지 않습니다. 트위스트식인 것도 마음에 드네요. 질감이 좋고 보기만 해도 참 흐뭇합니다.
한때 들고 다녔던 파버카스텔 볼펜 세트입니다.
만년필은 너무 짙고 연필은 옅습니다. 저에게는 볼펜의 농도가 알맞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선물한 볼펜입니다.
워터맨 브랜드 볼펜입니다. 《안의 시선》이 나오는 데 큰 도움을 주신 교수님께 선물해 드렸어요. 각인된 볼펜은 처음 본다면서 굉장히 좋아하셨습니다. 당시에 드렸던 선물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볼펜(워터맨 브랜드.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 구매), 수정 테이프(단순생활 브랜드.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 구매), 필통(흑심 매장에서 구매), 공책(몰스킨 브랜드.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 구매), 책갈피 두 개(OIMU 브랜드 제품), 디퓨저 200ml(교보문고에서 구매). 색은 검정으로 통일했습니다. 감동하셨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다음으로 제 두 번째 파버카스텔 볼펜입니다.
사 년 전에 구매했습니다.
파버카스텔 엠비션 람버스 볼펜입니다. 워터맨 브랜드로 살까 고민하다가 파버카스텔로 골랐습니다. 이 볼펜 저 볼펜 쓰다 보니 파버카스텔이 저와 잘 맞는 듯하네요. 기회가 된다면 그라폰 파버카스텔 볼펜도 써 보고 싶습니다.
PENCO 빈티지 Knock Ballpoint 볼펜 0.5mm입니다. 선물하는 볼펜은 이 제품으로 정착했습니다. 화이트와 그린이 제일 예쁘고 블랙도 나름 괜찮습니다. 퍼플도 나쁘지 않고 튀고 싶다면 핑크를 택해도 괜찮을 듯하네요.
다만 가볍게 좋아하는 정도이지, 깊이 파고 들어가거나 수집을 하지는 않습니다. 어찌 됐든 글 쓸 때 필요한 볼펜을 찾으려는 거지, 종이든 펜이든 그 수단 자체가 목적인 건 아닙니다. 세어 보니 목적에 따라서 쓰는 볼펜이 다섯 개입니다. 하나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여러 개를 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정리하면 두 가지 정도입니다.
목적에 따라서 펜을 달리 쓰는 첫 번째 이유. 글씨를 '빨리 잘' 쓴다면 상관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사든 생각을 옮겨 적는 일이든 조용한 환경에서 시간을 오래 들입니다. 나머지 환경에선, 이를테면 메모하거나 회의 내용을 적거나 필기할 때면 빨리 쓰는 게 중요하죠. 예쁘게 쓴다기보다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빠르게요. 그러면 글씨를 개발새발 쓰게 됩니다. 고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결국 방법을 바꿨습니다. 일단 흘려 쓰고 나중에 목적에 맞게 정돈해서 옮겨 적는 것으로요. 일을 두 번하는 셈이죠. 그러다 보니 암만 조용한 곳에서 차분히 눌러쓴다고 한들, 평소에 급하게 휘갈겨 쓰던 펜으로는 잘 쓰려야 잘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에서 쓸 펜을 각각 다르게 하는 것입니다. 사적인 영역은 글 쓸 때이고 공적인 영역은 나머지 환경에 해당합니다.
목적에 따라서 펜을 달리 쓰는 두 번째 이유는 취향입니다. 터무니없이 비싼 펜을 쓰는 게 아니고 좋은 펜 쓴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니 겉멋을 부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생 땐 아무 볼펜으로 A4 용지나 공책에 글을 썼습니다. 스물세 살에는 파커 만년필을 선물 받으면서 좋은 펜을 쓰기 시작했구요. 이천십육 년부터는 라미 만년필을 쓰고, 라미 볼펜도 써 보고. 그러다가 이천이십 년에 라미 만년필이 망가져서 못 쓰게 되면서 파버카스텔 볼펜을 썼습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갖고 싶어서 벼르고 별렀던 볼펜이죠. 나중에는 선물할 볼펜을 찾다가 카웨코 브랜드 볼펜을 색상별로 두 개 사서 북 파우치에 넣었고, 다이어리 전용으로 쓸 볼펜을 찾다가 크로스 브랜드 제품을 고르게 됐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마음에 드는 볼펜을 하나둘 사다 보니 개수가 많아진 셈이네요. '여기엔 이 펜이 어울리겠네' 싶은 대로 나눠서 쓰고 있을 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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