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by 안다훈



서울에 오게 되면서 자취할 곳을 구하러 다녔던 이천십칠 년 가을. 회사에서 이삼 분 거리에 있는 고시원에 들렀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어둡고 누런 조명 탓에 칙칙한 방. 침대에 누우면 발이 벽에 닿고 종아리 위까지는 책상이 있는 구조. 짐을 두기는커녕 한 계절을 입을 옷을 걸어 둘 여유조차 없는 공간. 화장실과 샤워실은 당연히 공용이기에 복도로 나가야 하는. 조금의 과장도 없이 한두 달만 있어도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몇 분 머물지 않았던 고시원은 우울함과 참담함에 기반을 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조금 눈을 높여서 고른 곳은 고시텔. 원룸텔이라고도 말한다. '텔'은 호텔에서 따 왔다. 나름 숙박 시설 티를 낸 덕분일까, 고시원보다 많은 면에서 나았다. 조명이 어둡거나 누렇지 않았고 침대 끄트머리에 책상이 있지 않았으며, 바닥도 벽지도 참혹하지 않았다. 화장실(겸 샤워실)이 포함된 방으로 골랐더니 십만 원 추가. 창문 있는 방은 오만 원인가 칠만 원 추가. 그렇게 사람답게 살기 위한 조건을 갖추니 월 사십오만 원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당시 인턴 월급의 삼분의 일을 넘었던 액수로 기억한다. 여전히 절망적이었으나, 적어도 화장실에 가거나 샤워하러 갈 때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감사했다.

인턴 기간을 다 채우기 전에 잘리고. 대학교 졸업 관련해서 문제가 생겨서 복학해야 하고. 이런저런 문제가 겹쳐서 본가로 돌아갔다. 허망하게 끝난 첫 사회생활. 이천십팔 년 일 월쯤에 내려갔고, 같은 해 팔월에 다시 서울로 올라았다. 이번에도 하는 수 없이 원룸텔로. 무디지 않은 사람이라면 차츰 마음이 망가질 테다. 일 년쯤 살아 보니 그렇더라.

옆옆방 아저씨가 찾아와서 열두 시 넘어서 물소리가 천둥처럼 들리니 샤워하지 말라 하고. 오른쪽 방에 사는 아저씨는 꼭 새벽 한두 시 넘어서 화장실에 가고(벽 건너편에 화장실이 있어서 배변 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소리가 다 들렸다). 왼쪽 방에 사는 대학생 커플은 새벽에 사랑을 나누거나 볼륨을 키운 채로 영화를 보고. 어떤 아저씨는 새벽 두세 시쯤에 문을 쿵쿵 두드리더니, 무슨 소리가 들려서 밖에 나갔다고, 이 방에 불이 켜져 있길래 왔다고, 혹시 시끄럽게 굴지 않았느냐고 대뜸 따지고(그는 미안하다는 말 없이 문을 닫고 가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문을 못 닫게 막고 잠시나마 노려보는 일뿐이었다).

주거 공간이 그 노릇을 제대로 못 한다는 건, 집이 집 같지 않다는 건, 겪어 보니 서글픈 일이었다. 익숙해질 만하면 본가에 다녀오곤 했고, 그때마다 원룸텔로 돌아와야 한다는 현실이 우울했다. 상처 난 자리에 딱지가 채 앉기도 전에 다시 상처를 내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려나. 문득 늪에 빠진 듯 헤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점과는 별개로, 언제까지고 원룸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면 어떡하나 싶었다. 부랴부랴 부동산에 다녔고 전세 자금 대출과 신용 대출을 받아서 원룸으로 이사왔다. 이따금 스트레스를 받는 층간 소음 문제만 제외하면 나름 만족하면서 산다.

곱씹을수록 원룸텔이라는 단어 자체가 웃긴다. 호텔이든 모텔이든 오래 머무르면 장기 투숙이라고 말하지, 그곳에서 산다고 하지 않는다. 반면에 원룸텔과 고시텔은 접미사 '텔'을 붙이고도 자기들이 집인 양 군다. 그럼에도 집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와 차마 발을 붙이고 싶지 않은 까닭은 이런 모순 때문이지 않을까. 고시원이라. 고시텔이라. 원룸텔이라. 고시원보다 좋은 이미지를 얻으려고 '텔'을 붙였다. 애초의 목적이 퇴색된 탓도 있겠지만, 고시라는 어감이 주는 암울한 느낌을 없애려고 '원룸'으로 대체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가 없는가의 그 애매한 경계에 놓인 거주지. 최소한의 공간에 최소한의 조건만 갖춘, 어찌 보면 군대의 생활관과 다를 바 없는 공간. 벗어난 지 이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원룸텔에 살았던 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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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 산문』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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