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그때 그 노트

시를 쓰려 했던 고교 시절

by 안다훈



고교 시절,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쓴 시입니다.





「그대 모습」



깊어지는 균열 속에

조각나는 오색 유리

원래대로 돌리기엔

이미 깨져 버린 추억

바라보며 오열해도

냉혹함 앞에 무용지물

애써 부정하려 해도

거부할 수 없는 현실

떨리는 가슴 멈춰 보니

돌이킬 수 없는 현실

초점 맞춰 바라보니

건너편의 그대 모습






아무래도 짝사랑을 하다 보니 시처럼 썼던 글들도 대개 이런 감성입니다.












「눈물」



공허한 시선을 저 하늘 속에 맞춘다

하늘 위의 구름 한 조각에 초점을 맞추지만

구름은 이내 흩어져 버린다

흩어진 구름 대신 먹구름이 몰려와

눈가에는 비가 차오른다

끝내 비는 쏟아져 내려 버린다

이제는 비어 버린 한쪽 가슴을 채워 주는

아픔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가려 주는

그런 비가 나의 시선 안에서 형성되어

나의 세상을 뒤덮어 내린다

세상에 외치는 이별의 소리를

그 안에 묻어둔 채로






공허함, 아릿함, 비. 이런 단어들을 자주 썼던 기억납니다.












「이별」



흘러내린 머리카락

잘라 내는 아린 추억

거울 속에 비친 모습

눈물 속에 보내는 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클리셰 같은 글입니다. 네모나고 짧으며 「미용실」이라는 제목이 붙어도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퍼즐」



마치 퍼즐처럼 조각조각 나 있는 기억들

남은 기억 속에 살아 있는 그리운 친구들

이젠 바쁘다고 미안하다 말하는 변명들

대신 빈자리를 채워 가는 새로운 사람들

여러 이름으로 다가오는 낯선 인연들

그런 상황 속에 바람처럼 흐르는 시간들

가끔 시간 내서 꺼내 보는 반가운 사진들

사진 뒤 표면에 적혀 있는 흐릿한 기록들

문득 추억이란 이름으로 내리는 눈물들

가슴 아려 오는 행복했던 기억의 파편들

술로 위로하며 불러 보는 그리운 바람들

홀로 위안하며 외쳐 보는 어릴적 동지들






네모난 글을 좋아했습니다. 어쩌다 이리 됐는지 모르지만.. 한동안 즐겨 썼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별들은 언제나 제자리걸음뿐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어두운 세상만 쓸쓸히 있을 뿐

시간이 흘러도 인지를 못 하는

나에겐 언제나 한 줌의 한숨뿐


오늘도 내일도 공허한 하루에

신발 끈 묶인 채 이끌려 걷는다.






어떤 감성인지, 어쩌다 쓰게 됐는지는 잊었습니다. 15~16년쯤 된 글이기에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느낌입니다.












「외톨이」



별을 켜면 떠오르고

달을 끄면 가라앉는


나의 숨을 조여 오는

거리 위의 그림자들






나름의 비유를 떠올리려 애썼던 흔적이 보입니다.












「여자와 남자」



이별을 통보한 냉정한 여자

결국엔 무너져 내리는 남자

술 취한 걸음을 옮기는 여자

밤늦게 집으로 향하는 남자

연인을 마중을 해주는 여자

조심히 가라고 말하는 남자

우산이 망가져 달리는 여자

우산을 쓰고서 느긋한 남자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여자

우산을 가지고 기다린 남자

회식을 마치고 만취한 여자

택시에 태워서 보내는 남자


모두가 거니는 밤하늘 거리

거리를 메우며 내리는 빗물

빗방울 내리는 모두의 우산

우산을 접고서 잠드는 여자

여자와 껴안고 잠드는 남자

남자의 귓가를 울리는 음악

음악을 내리는 고요한 세상

세상에 내리는 비들의 환상

환상이 흐르는 공허한 거리

거리에 찾아온 차가운 새벽

모두가 잠들어 고독한 새벽

또다시 반복될 안개 낀 새벽






비틀어 쓰려 했고, 한편으로는 단조로움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빗속에서 그대와 나」



우산 위로 들리는 거추장스러운 소리

우산을 내려 나의 몸을 비에 맡긴다

아름다운 하늘의 소리를 온몸으로 느낀다

처음의 낯설던 느낌 대신

거추장스러운 나를 버리고

익숙해져 가는 나를 발견하면서

멈춰 버린 세상을 바라본다

시끄러운 세상 소리 모두 빗소리에 묻힌 채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이 공간 속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마주 잡은 두 손을 통해 밀려 들어오는 추억을 제어하지 않은 채로

모든 생각들을 이 공간 속에 맞춘다

이 공간 안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솔직해진 채로

밀려 들어오는 기억에 나를 맡긴 채로

그렇게 나는 비와

이 공간과

그대와 하나가 된다.






닿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그랬던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미련」



스쳐 가는 달빛 속에

날카로운 바람 한 점

메말라진 공기 담아

휘청이는 나에게로


술에 취한 나인 걸까

아파하는 나인 걸까

달에 취한 깊은 밤에

비틀대는 나의 걸음


걷다 보니 그대 집 앞

불러 봐도 묵묵부답

어느샌가 높아진 담

태연한 척 애써 담담






여전히 좋아하는 글입니다. 당시의 감정을 잘 담았던 것 같습니다.












「대답을 그린다」



대답을 그린다

멀어져 가는 저 하늘 위를

눈물로 흐린다

하루하루 지새 왔던

그대와의 추억이 번진다

하지만 그 안에 남아 있는

그대를 난 그린다

불러도 대답 없는 저 메아리를

내 가슴 안에 채운다






서툴러도, 별 내용 아니어도 괜히 아끼게 되는 그런 글입니다.












「그 사람이 힘내길 바라며」



높디높은 장벽에 막혀 주저앉은 그대

아무도 벽을 넘어서는 방법을 알려 주지 않았죠

새하얀 종이 위의 떨어진 빗방울같이

내린 눈물 아픈 가슴 안엔 울음만 쌓여 가죠

그런 그대 바라보는 나는 세상에 갇혀 있죠


힘든가요 포기하고 싶은가요

눈앞에 보이는 벽 그댈 밀치나요

그렇다면 발밑을 내려다봐요

수많은 해바라기가 고개 숙인 모습을

그 아래 놓인 씨앗들, 이제야 발견했나요


앞을 봐요 현실을 직시해요

그대 위해 희생한 이들 부디 잊지 마요

멈춘 폭풍, 넘어선 벽을 뒤로하고 나아가요

걸어 잠근 자물쇠 풀어 버리고 쌓인 눈물 모두 내게 맡긴 채






그분에게 글을 선물했고, 정말 큰 위로가 됐다는, 고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큰 기쁨을 느낀 때였죠.












「비와 그대」



비를 사랑한다던 그대는

아픈 비가 되어 나의 가슴속에 내리고


그대가 잠든 사이에 모든 감정을 터트려

소나기가 되어 내린 나는


그대가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그대의 시선 속에서

작은 웅덩이로 형성되어 머무릅니다






그분이 비를 좋아해서 저도 비를 좋아하려 했습니다. 비와 관련한 시를 많이 썼습니다. 써 둔 시 중에서 「비와 그대」가 가장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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