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치는 일을 내 기준으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히크만 카테터 삽입 전, 림프샘이 부어서 침대에서 못 벗어나던 시기, 히크만 카테터 삽입 후, 무균실에서 생활한 삼 주일.
일반 병실에 닷새쯤 머물 땐 수액 줄을 팔에 연결했다. 수액을 교체할 즈음에 씻으면 간호사 선생님이 수액 줄을 잠시 빼 주시기도 한다. 편히 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샤워실은 한 층에 두 개씩 있으니 시간대를 잘 공략하자. 먼저 이용하는 사람이 있으면 문이 열릴 때까지 기웃대는 수밖에 없다. 나중엔 이르다 싶어도 비었으면 세면 도구를 챙겨서 들어갔다. 이때까진 약간 불편한 정도.
난도가 급상승한 건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부터다. 거의 동시에 샅 쪽 림프샘이 붓자 침대에서 못 벗어났다. 앉아만 있어도 환부에서 피가 나던 시기다. 세면 세족은 사치인지라 되는대로 물티슈로 찝찝한 곳을 문질렀다. 떡질 머리카락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간병인을 고용했을 땐 그분이 따듯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셨다. 온기와 포근함을 얼마쯤 느꼈으며 잠시나마 개운했다.
오른쪽 가슴에 히크만 카테터를 삽입하면 조신해진다. 세수하다 수액 줄을 건드려서 심장이 철렁하는 일을 몇 번 겪으면 그리된다. 이상 없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가슴 쪽이 당겨지면 거울을 보며 확인한다. 또한 카테터를 삽입한 곳에 물이 닿으면 안 되므로 샤워할 때마다 비닐봉지로 묶는다. 무슨 '혹부리 환자' 같다. 세게 묶으면 당기고 살살 묶으면 하나 마나이니 잘 조절하자.
일이 차 항암 치료 후 퇴원하면 히크만 카테터를 달고 집에 간다. 테이핑 한 짧은 관 여러 개가 가슴에 달렸다. 씻을 때 신경 쓰는 부분은 같다. 물 조심과 비닐봉지. 장소만 달라졌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이다. 갑갑한 마음에 그 근원을 본다. 덜렁이는 관을 따라가면 삽입된 부위가 볼록하다. 누르면 이질감과 함께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음이 와닿는다. 이걸 제거하려면 돌아가서 남은 과정을 겪어야 한다.
삼 주 지나 재입원했고 일반 병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무균실에 들어가면 수액 걸이를 병실 바깥에 두고 히크만 카테터에 기다란 수액 줄을 연결한다. 안에서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넉넉하다. 이 줄을 실수로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살짝 목줄에 묶인 개 같다. 샤워부스는 침대 머리맡에 커튼 하나로 분리됐다. 양팔을 다 뻗을 수 없을 만큼 좁으며, 바닥이 스테인리스강 재질이기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틀에 한 번 샤워했는데 간병인이 부지런히 오가며 애써 주셨다. 먼저 침대보와 베개피를 벗겨서 이불과 함께 샤워부스 주변에 겹쳐 깐다. 커튼을 치고 씻지만 주변에 물이 튄다. 새 침대보와 베개피를 씌운 뒤에 가제 수건과 갈아입을 환자복과 속옷을 가져다 주신다. 그것들을 챙기고 샤워부스 앞에 클렌징 폼과 보디 로션 들을 두면 옷 입은 채로 할 일은 끝이다.
턱이 낮은 샤워부스에 올라선다. 수건과 속옷과 환자복은 커튼 위에 걸치고 벗은 환자복과 속옷은 물이 많이 튈 만한 곳에 포갠다. 카테터를 비닐봉지로 묶으면 준비가 끝난다. 클렌징 폼으로 얼굴과 머리를 씻고 가제 수건에 보디 워시를 묻혀서 문지른다. 피부를 보호하느라 타월 대신 부드러운 수건을 쓴다. 다 씻으면 몸과 함께 링거 줄의 물기를 닦고 마무리한다. 그러면 간병인이 와서 정리해 주신다.
개운해서 좋지만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편하다. 좁디좁은 부스라 움직임이 제한되기에 나름 수고스럽다. 게다가 씻다 보면 물이 많이 튀는데, 수압을 약하게 조절하고 커튼이 아닌 벽 쪽으로 물이 가도록 해도 흥건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걸 생각하면 준무균실이나 일반 병실에서 샤워할 때가 쾌적한 환경이었지 싶다. 적어도 물이 튀는 걸로 뭐라 하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다시 준무균실로 가서 아흐레 동안 지냈다. 달떠서 씻을 때의 불편함이고 뭐고 아무 문제 되지 않았던 시기. '완전 일치 조혈모 세포 이식'이라서 카테터를 제거하고 퇴원할 수 있어 기뻤다. 이 주일 뒤에 실밥을 제거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편히 씻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삶의 질이 수직 상승하는 기분. 숙주 병으로 적잖이 고생해도 카테터를 생각하면 살 만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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