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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다미로 Apr 27. 2023

선의를 베풀 용기

<고요한 우연> 

 뉴스에서 종종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돕기 위해 선뜻 나서서 선의를 베푼 시민들의 사연이 소개하곤 한다. 주로 '시민 영웅, 슈퍼맨'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위급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연이 소개된다. 인터뷰를 하는 시민 영웅들은 다들 부모님 같아서, 아들·딸 같아서 본능적으로 선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렇게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고 반사적으로 베풀게 되는 선의가 있는 반면,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한 선의도 있다. 수현이 베푸는 선의가 그랬다. 괴롭힘을 당하는 '같은 반 아이'를 돕고 싶지만 수현에게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선의를 베풀기 위해 다가설 용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용기 그리고 어렵게 베푼 선의에 돌아오는 싸늘한 반응을 감내할 용기.

 자신이 평범하고 심심한 존재라고 느끼는 수현이 이렇게나 많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데는 불의를 견디기 어려운 마음,  정후의 존재, 고요와 우연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무엇보다 묵묵히 수현의 곁을 지키는 지아의 존재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저 임시방편에 불과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었다. 답답하고 미련해 보일지라도 이게 내 방식이니까. <194p.>


"착한 게 아니야. 그냥 내가 별거 없는 애라서, 그 방법밖에 없었던 것뿐이야.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고 내 몫을 덜어 주고 가끔은 비겁해지기까지 하는 거."

(···)

"이수현, 너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야. 나처럼 조금 삐딱하고 매사에 의심이 많은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감성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너랑 같이 있으면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지는 거야."

<215p.>


「고요한 우연」에서 수현의 성장통만큼이나 눈길이 갔던 것은 이야기 곳곳에 숨은 따뜻한 말들이었다. 달콤한 버블티를 닮은 지아의 농담 속에, 캐모마일 차처럼 따뜻한 정후의 말속에, 수현이 건네는 SNS 대화에 공감과 위로가 묻어있다. 이야기 속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건네는 위로와 공감의 말로 서로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견뎌내기 힘든 사건을 겪고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주변 사람들의 공감과 위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 토닥이는 손길 그리고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것처럼 다양한 방식의 위로가 우리가 쉽게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하고 이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 네가 다치지 않으려면, 네 의지와 상관없이 너한테 흘러들어 온 것들은 그렇게 다시 흘러 보내는 게 맞는지도 몰라.

▶ 고이지 않고, 넘치지 않게. 너는 바다잖아.

▷ 아주 차갑고 무심한 바다지.

▶ 아주 깊고 고요한 바다이기도 하고.

<85p.>


▶ 나는 내가 재미없는데.

▷ 나는 엄청 재밌는데. 네가.

▶ 나한텐 누구한테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없어. 정말 하나도.

▷ 그건 재미없는 게 아니라 평화로운 거야. 좋은 거지.

<87p.>


▶그거 알아? 네가 올린 피규어 사진을 봤을 때.

▶ 나는 잭팟이라고 생각했어.

<160p.>


 "그리고 이수현 넌 슈퍼맨은 아닐지 몰라도, 엄청난 지구력을 가진 지구인이야. 여기까지 온 것만 봐도 그래."

<229p.>



사람 인(人)은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선 모양을 따와서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이 혼자서는 온전할 수 없기에 서로 등을 내주고 기대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옛사람들의 말처럼 옆에서 보면 두 사람이 기대고 선 모양이지만 조금만 옆으로 나와 고래를 돌려보면 실은 한 사람을 위해 여러 사람이 등을 내어주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이 서로에게 등을 기대고 서있는 모양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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