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냉정한 현실이지만 따뜻한 말과 다정한 눈길로 찬찬히 살피다 보면 공존의 삶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영화 <그녀에게>를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류승연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영화의 원작인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찾아 읽어보려던 참에 신간 출시 소식과 서평단 모집 안내문을 보게 되어 서평단에 신청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서평단에 선정되어 <아들이 사는 세계>를 읽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 덩치는 커지고 목소리도 걸걸해졌지만, 여전히 뿡뿡이를 좋아하는 아들의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아들이 사는 세계>는 ‘중증의’, ‘덩치 큰’, ‘남성’ 발달장애인 아들의 자립과 공존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가슴이 먹먹하고 무겁게 흘러갈 수 있는 주제를 류승연 작가만의 당차고 위트 넘치는 표현으로 풀어냈다. 차갑고 냉정한 현실 이야기에 가슴이 답답해질 때쯤 사이다 같은 농담을 건네고 호탕한 웃음과 함께 등을 두드려주는 엄마 류승연을 만날 수 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공존에 대해 ‘현실에서 눈 돌리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 진짜 변화의 시작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한 작가의 말처럼 책을 덮을 때쯤이면 함께 의지하며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된다.
<38p.> “아들보다 하루만 더 해주세요”라는 말의 진짜 뜻은 “아들이 제발 나보다 먼저 죽게 해주세요”라는 것이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이 먼저 죽는 삶을 매일 기도하며 산단 말인가. 살게 나는 아들의 장례를 치르는 게 평생의 소원인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다.
<77~78p.> 반 친구들이 친구로 인정조차 하지 않고 보호하거나 배제해야 할 ‘장애인’으로 대했다는 뜻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그런 방향으로 양육과 교육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략) 그러자 비로소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이 갈등 해결 능력을 습득하지 못하도록 오히려 독려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주변 어른들이 앞장서서 어릴 때부터 아무런 갈등 상황에 노출되지 못하도록 막아서고 있었다.
<185p.> 그해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던 방법, 애정으로 관찰해 눈으로 행동을 읽으면 된다. 그러면 행동 속에 숨은 말로 가리고 있는 마음이 보인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읽힌다. (중략) 사랑과 관심이 있어야만 상대를 지긋이 관찰할 수 있다. 애초에 상대를 이해하고 싶은 의지가 없으면 관찰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을 내지 않는다.
<아들이 사는 세계>는 발달장애라는 세계에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에게는 공감과 위로를 건넴과 동시에 차가운 현실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준다. 나처럼 발달장애라는 세계의 변두리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그 속으로 한 발 더 내디딜 수 있도록 두 어깨를 주무르며 ‘이제는 행동으로 옮겨보자!’라고 격려한다. 그리고 발달장애라는 세계를 전혀 몰랐거나, 관심 없던 이들에게는 ‘여러분 생각만큼 이상하거나 무섭지 않으니 한 번 들러 보세요.’라며 초대의 말을 건넨다.
나는 <아들이 사는 세계>가 감동 에세이, 장애 공감 도서, 교육 관련 도서만으로 분류되지 않았으면 한다. 어떤 사설보다도 날카롭고 냉정한 시각으로 세상을 진단하고, 어떤 소설보다도 극적이고 감동이 있다. 게다가 어떤 연설문보다도 설득력 넘치고, 발달장애라는 세계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이 널리 읽혀서 언젠가는 아들이 사는 세계가 ‘중증의, 덩치 큰, 남성’ 발달장애인이 아니라 ‘계란 과자와 뿡뿡이를 좋아하는, 마음에 드는 사람의 손등에 바람을 부는, 행동으로 말을 전하는’ 동환 씨로 비추어지는 세계가 되기를 온 마음을 다해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