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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승 Nov 19. 2021

또 수능이 끝났다

첫 수능을 본지 어느덧 11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2011년도 수능 이야기를 해보자면, 우리는 당시 G20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리는 바람에 막판에 일주일 정도 수능 시험이 연기되었다. 수능 시험에 필요한 샤프가 지급되는데 툭하면 부러지는 최악의 샤프를 받게 되었다. 이 샤프는 아직도 인터넷 상에서 '가장 악명 깊은 샤프'로 기록되어있다. 그날 누구랑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어떤 기분으로 시험을 치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중앙대학교 수시 합격한 친구 (나중엔 연세대 추가 합격해서 결국 연대로 갔다)와 화장실에서 낄낄대며 웃었던 기억뿐 이다 ㅠㅠ


'나 그냥 재수할래'

2010.11월

수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한테 제일 먼저 했던 말이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수능 가채점을 끝내고 어떤 학교를 가야 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원서를 쓸만한 대학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놀고 기숙학원을 등록했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수능 가채점을 끝내고 어떤 학교를 가야 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원서를 쓸만한 대학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놀고 기숙학원을 등록했다. 공부란 제대로 해본 적 없기에 기숙학원에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앉아있는 힘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8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재수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돈을 쓴 만큼 수능에서 멋진 성적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과는 첫 수능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기초가 중요했던 건지, 내가 공부를 안 한 탓인지 모르겠다. 남들이 말하기를 '재수해봤자 첫 수능과 비교했을 때 놀라운 변화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는 말이 사실이 된 것이다. 그래도 국영수를 제외하고 과학탐구 영역에서 큰 변화를 얻었다. 고등학생 때 공부할걸... 후회만 남는 재수였다.


대학원서는 그럭저럭 국립대학교에 써서 합격을 받았다. 


4학년 내내 성실하게 공부했고,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재수에서 오는 후회를 모두 털어냈다. 장학금을 받아봤고, 대학 음악동아리 회장을 하면서 공연도 하고, 리더십을 펼칠 기회도 얻었다. 나는 여전히 대학시절 후회란 남아있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에 나와보니 SKY는 인생 한 줄의 이력서일 뿐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력서가 평생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배우는 건 비슷하지만, 사람들이 좋은 대학교를 보내려는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첫째, 도서관이다. 나는 지방 국립대를 나왔다. 물론 여기도 책이 많지만, 어쩔 땐 정말 보고 싶은 책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시험기간을 제외하고 공부하는 분위기 자체가 거의 없었다. 둘째, 교수진의 역랑이다. 나는 교양수업 시간강사와 몇 번 트러블이 있었다. 수업의 질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연히 전경련에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님에게 경영 코칭을 받은 적 있는데, 이런 수업을 매일 받을 수 있다니 서울대 경영학과 학생들이 무척 부러웠다. 


난 여전히 수능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 학생들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걷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면 이상한 손가락질을 받곤 한다. '무조건 공부'는 아니지만, 내가 공부 이외에 전문가가 될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면 수능을 위한 공부는 과정을 통해 배우는 게 많다. 나도 결과는 안 좋았지만, 고등학생과 재수 시절을 걸쳐오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능이 끝났다. 그러나 인생의 시작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멋지게 놀고, 더 멋진 모습으로 사회에 나왔으면 좋겠다. 모든 수험생 여러분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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