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열다
공사 기간만 5개월이 넘게 걸렸다. 그 집을 처음 봤을 때부터 한눈에 ‘세월의 흔적’이 드러났다. 벽지는 이미 색을 잃어 누런 빛을 띠고 있었고, 곳곳에는 곰팡이가 번져 얼룩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손끝으로 문틀을 스치면 오래된 종이 벽지가 가볍게 바스러져 내려왔다. 화장실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배수구가 막혀 물이 제대로 내려가지 않았고, 타일은 군데군데 갈라져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올라왔다. 오래된 변기 옆의 벽면은 습기에 약해져 손으로 눌렀을 때 푹 꺼질 정도였다. 그리고 요즘 보기 흔치 않은 외부 화장실이었다.
바닥은 삐걱거림을 넘어 아예 군데군데 꺼져 있었다. 한옥/목조주택이다 보니 걷다 보면 발밑에서 ‘퍽’ 하고 울리는 소리가 났고, 그중 일부는 목재가 썩어 손을 대면 그대로 부서졌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였다. ‘겉을 손보는’ 수준이 아니라 뼈대만 남기고 다 들어내는 대공사였다. 이 집을 고친다는 건 단순히 외부에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벽지를 바꾸고 가구를 들여놓는 문제가 아니었다.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했다. 벽지를 다 뜯고, 바닥을 뚫고, 화장실은 통째로 들어내 위치를 바꿨다. 인테리어 비용은 예상보다 두세 배 넘게 들었고, 일정도 크게 지연됐다. 속에 있는 근본을 먼저 쌓아 올리자는 생각에 비용이 늘어나도 후회는 없었다.
그렇게 집은 전략적으로 설계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방은 총 세 개, 그리고 그 세 개의 방마다 각각 화장실을 두었으며, 모두가 함께 쓸 수 있는 아늑한 공용 공간도 마련했다. 여러 업체의 리뷰를 봤을 때 숙박업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불만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 개수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높은 평점을 유지하는 숙소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개별 화장실’을 제공하고 있었다. 각 방마다 화장실을 만드는 데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고객 만족을 잡는 합리적인 투자였다.
운영하면서 방문한 게스트들이 종종 “화장실이 많아서 좋았다”라고 평가했는데 나는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맞췄다는 생각에 성취감을 느꼈다. 설계된 인테리어 시공은 경쟁 게스트하우스들과 차별점을 가져간 것이다.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건 가구 인테리어였다. 단순히 집을 꾸미는 차원이 아니었다. ‘내가 거주할 집’을 꾸미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여행을 완성할 공간’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세 개의 방에 각각 콘셉트를 만들기로 했다. 올리브, 그린, 화이트였다. 이름만 정했는데 색채에서 오는 느낌이 달랐다. 올리브 방은 생기와 젊음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녀들을 타겟팅했다. 그린 방은 따듯하고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부모님들과 커플을 타겟팅했다. 마지막으로 화이트 방은 깔끔하고 미니멀한 휴식처로 혼자 사용하기 딱 좋은 방으로 정했다. 콘셉트를 정해두고 나니 가구와 소품을 고르는 기준이 생겼다.
이케아 매장에 들어선 순간 마치 새로운 전쟁터를 마주한 듯했다. 끝없이 이어진 쇼룸 속에서 나는 손에 계산기를 들고 수십 번을 더하고 빼며 가성비를 따졌다. 작은 커튼 하나를 두고도 한참을 서서 고민했다. “이게 햇빛을 잘 막을까?” “사생활 보호가 충분할까?” “내구성은 어떻지?” 순간순간이 사소한 선택 같았지만, 그 모든 게 게스트의 경험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았기에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고민을 이어가던 중, 어느 사장님이 해주신 조언이 떠올랐다.
“에어비앤비는 침대가 많을수록 좋아요. 게스트들이 제일 먼저 보는 게 침대 개수예요”
단순한 말 같았지만, 나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침대를 배치하기로 했다. 방마다 퀸사이즈 침대를 두고, 남는 공간에는 소파 베드를 들여놓았다. 실제로 외국인 게스트들의 가족 단위는 우리나라와 많이 달랐다. 한국은 보통 3~4인 가족 단위가 많지만, 외국 게스트들은 대가족 단위 여행이 흔했다. 삼대가 함께 움직이거나, 형제자매 부부가 합류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단순히 ‘넓은 집’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공간에서 함께 머물 수 있는 곳과 ‘침대 수’를 가장 크게 따졌다. 호텔은 방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으며 비용도 많이 들고, 가족들이 흩어지게 된다. 반면, 에어비앤비는 한 공간에 모두가 모여 잘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이는 곧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침대를 많이 들여놓는 것은 단순히 숙박 인원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고객의 여행 문화와 소비 습관을 반영한 투자였다. 게스트들의 리뷰를 보면 대부분 ‘온 가족이 한 집에서 함께 머무를 수 있어 좋았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작은 집을 브랜드로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과제는 조명 선택이었다. 형광등 하나로도 방이 밝아질 수 있었지만, 분위기를 만들 수 없었다. ‘화이트’ 방에는 은은하면서 따듯한 조명을, ‘올리브’ 방에는 하얗고 밝은 조명을, ‘그린’ 방에는 자연광을 살릴 수 있는 램프와 사진, 액자를 준비해 두었다. 조명을 제대로 설치하기 위해 별도의 시공을 할 정도로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였다. 조명 하나로 방의 기운이 달라졌고, 그 안에서 내가 꿈꾸는 이야기가 완성됐다.
당시엔 단순히 게스트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철저한 브랜딩 작업이었다. 공간의 콘셉트를 정의하고, 그에 맞는 색채와 소품을 일관되게 배치하는 과정은 기업이 제품 라인을 기획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작은 주택 하나가 브랜드가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