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무서웠던 여행자

by 연승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국가의 여행자들을 만나고 이야기한다. 모두를 기억할 순 없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은 있다. 유난히 흐린 7월 여름이었다. 한국은 우기로 인해 날씨가 흐렸고, 계속 비가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필리핀에서 온 8인 가족이 체크인을 했다. 그들은 한국에 처음 방문했고,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나라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던 새벽 1시경 갑자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에어비앤비 메시지 알람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물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집이 잠길 것 같아요”


순간 잠이 확 깼다. 우리 숙소는 마당이 있고, 언덕 위에 지어진 단독주택이라 구조상 비에 잠길 리가 없었다. 이분들이 뭔가 착각했던가 싶어 CCTV를 확인했다. 그리고 너무 놀랬다. 지붕에 있는 물이 범람해 이미 마당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 평소라면 배수구로 빠져나가야 할 물이 그대로 고여 있었고, 현관 앞, 객실 문 앞까지 차올라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옷을 입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비는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자, 마당엔 가족 중 어머니가 서 있었다. 그들은 번갈아가며 불침번을 서면서 늦은 밤까지 마당을 지키고 있었다. 일행 아버지는 쓰레받기를 가지고 물을 퍼 나르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배수구가 비닐종지로 꽁꽁 막혀있었다.


“이거 왜 막으셨어요?”

그들은 겁먹은 얼굴로 대답했다.


“물이 천장에서 계속 내려와요. 필리핀에선 항상 이렇게 했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본곡에서 몇 년 전 큰 홍수를 겪었다고 한다. 가족 중 한 명이 그때 물난리로 부상을 입었고,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엔 공포에 가까운 불안 증세를 보였다고 했다. 나에겐 그냥 지나가는 ‘장마’였지만, 그들에겐 ‘공포와 트라우마’였다.


나는 급히 그들이 비닐봉지로 막아놓은 배수구를 열고, 고여있던 물을 쓸어냈다. 한순간에 물이 빠져나갔고, 숙소는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가족들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여행 둘째 날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래서 나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드라마에서 본 짜장면과 탕수육이라고 답했다. 다음날 짜장면을 시켜주겠다는 말로 안심시키고 돌아왔다.


그날 이후 그 가족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일부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배달음식을 받아 거실 탁자에 올려놓았다. 8인분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켰기에 적지 않은 돈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여행을 망치게 할 순 없었다.


“당신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잤어요”라며 일행 중 아버지가 필리핀에서 가져온 ‘건망고’ 과자를 나에게 건넸다. 나는 웃으며 “제가 필리핀 여행 갔을 때 정말 맛있게 먹었던 과자네요”라고 답했다. 그날 저녁, 여전히 비가 내렸지만 평소랑 다르게 느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리지만, 그 비를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다.”는 한 줄이 떠올랐다. 우리는 각자 인생 속에서 비를 겪는다. 어떤 비는 그저 스쳐가지만, 어떤 비는 마음에 남는다. 그들에게 비는 상처였고, 나에겐 추억이자 깨달음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비 오는 날을 위해 숙소에 우산 몇 개를 준비해 두고, 비 오는 날엔 방향제 몇 개를 더 가져다 놓았다.


누군가는 별거 아닌 에피소드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경험이다. 그리고 굳이 짜장면까지 배달시켜줘야 하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단순한 메시지로 끝낼 수 있었지만, 나는 게스트 한 명 한 명이 한국에서 좋은 추억만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항상 있다. 언어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신뢰를 쌓고 싶었다. 이러한 브랜드 철학이 나의 자산이 되었다. 좋은 경영은 사람을 이해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새벽, 나는 짜장면을 시키면서 신뢰의 씨앗을 심었고, 그 씨앗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단순히 ‘장마’와 비를 무서워했던 여행자를 통해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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