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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Aug 17. 2019

<내부자들> 감정은 열등한 것인가

내부자들(우민호, 2015)



어차피 대중들은 다 개, 돼지입니다. 거 뭐하러 개, 돼지들에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푸코는 지식보다도 지식을 배열하고 규정한 자가 누구인지 더 관심이 많았다. 예를 들어 ‘문송합니다(쓸데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인문학도여서 죄송하다는 뜻의 신조어)’라는 말의 이면에는 인문학보다 경영학, 경제학 또는 공학이 더 실용적이고 좋은 학문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만약 푸코가 이 말을 들었다면 단순히 이공계 지식이 더 우수한 지식이구나,라고 그치지 않고 ‘왜 그 지식은 다른 지식보다 우월하게 규정되었을까? 그리고 그 규정은 대체 누가 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푸코의 주장에서 파생되는 메시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누군가 규정한 방식의 세상’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푸코는 사회가 ‘광인’을 정신질환자로 규정한 것 역시 ‘이성’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결과물이라 생각했다.




푸코가 살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이성이라는 권력의 공고함과 그 세밀함은 우리 공동체에서도 절대권력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성에 반대되는 것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이성적 판단을 내려야 그것이 옳은 판단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기업의 주주총회는 물론이고 ‘썸’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자 할 때도 감정적 판단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이 우선된다. ‘지금 이렇게 문자 보내면 망하겠지?’


화성에서 온 남자는 이성적으로만 판단하고 금성에서 온 여자는 공감부터 원한다? 이 얼마나 차별적인 생각인지! 이성이 감성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에서 젠더 차별은 심화된다.


기득권은 이성이 우월하고 감성은 열등하다는 우리 내면의 목소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한다. ‘내부자들(우민호, 2015)’의 이강희(백윤식 분)는 미래자동차 회장 오현수(김홍파 분)에게 기득권 유지의 기본 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어차피 개, 돼지들입니다.”


그리하여 권력은 개, 돼지와 그렇지 않은 신민(臣民)들을 나눈다. 불의에 분노하여 돌이든 뭐든 일단 들고 보는 사람들을 개, 돼지로 규정하면 개, 돼지가 되기 싫은 이성주의자들만 남는다. 요컨대 기득권이 분노한 군중을 비이성적 ‘개, 돼지’로 규정하면 체제 순응적인 대중들은 마땅히 분노하지 않을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건 개, 돼지 같이 비이성적인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국민들을 들쥐 같다고 표현한 모 정당의 도의원부터, 세월호 유가족더러 ‘감성팔이’ 하지 말라며 ‘폭식 투쟁’을 감행한 일베 사용자들, 홍콩인들은 폭동 가담자들이며 부끄러운 존재라는 중국 공산당의 규정, 한국인은 ‘냄비근성’이 있어 불매운동도 금방 식을 것이고 ‘이성’적인 우리 일본 국민은 아베 내각만 믿고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DHC 텔레비전의 방송까지. 권력은 이성이라는 또 다른 권력을 이용하여 호신(護身)한다.


감성은 결코 이성에 뒤지지 않는다. 그 둘 사이에 층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 없는 감성은 맹목적이고 감성 없는 이성은 폭력적이다. 그러니 감성 없는 이성으로 유지되는 권력은 어떤 권력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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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글쓰기’는 영화 리뷰가 아닙니다. 작가가 영화를 빌어와 본인이 평소에 하고 싶던 잡소리를 하는 공간입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할 자유를 허락한 브런치에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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