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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Sep 03. 2019

우리 세대의 고공농성, 엑시트

엑시트(이상근, 2019)


“지금 우리 상황이 재난이야 재난”

이제 이 영화도 곧 끝물인데, 추석 맞이 영화들이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뒷북이긴 하다. 도통 바빠서 9월이 되어서야 엑시트를 봤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아 이거 진작 보고 일찍 글로 남겨둘걸’이라는 생각부터 스쳤다. 가벼운 코미디 영화라고 하기에는 영화를 보면서 다들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가 많았을 거라 느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20대를 두고 ‘사회와 정치에 관심이 없다.’ ‘투표율이 낮은 세대’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드러나는 현상만 보면 그 말들이 썩 틀린 것도 아니다.


지하철만 타도 세대별로 하는 행동이 다 다르다. 20대는 게임이나 웹툰 혹은 sns를 하기 바쁘다. 종이신문을 읽는 분이 있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60대 이상의 연령층이고 모바일로 신문 기사를 보고 있다면 40대 이상일 가능성이 크다. 신문? 우리는 정치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더 많다. 애초에 남일에 관심이 없고 신경 쓰기도 싫어한다. 정치를 싫어하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 공동체의 일이라고 해도 당장 ‘나’의 일은 아니니깐.


영화 초반부 용남(조정석)은 친구와 술자리에서 지진 경보 문자를 받는다. 문자를 받고 용남이 보인 반응은 ‘에이 뭐 우리 동네도 아니네’였다. 당장 나 먹고사는 일이 급하니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


누군가 불행한 일을 당한다면 딱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내가 뭘 나설 생각은 없다. 남일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당장 내 코가 석자여서 더 남일처럼 느껴지게 된다. 모두가 남일을 남일로 생각하다 보니 모두가 남이 된다. 20대는 그래서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을간의 경쟁에 뛰어든다.


20대는 옆에 서 줄 사람이 없다

그런 점에서 감독이 용남과 의주(임윤아 분)의 ‘완등’ 목적지를 ‘크레인’으로 삼은 것은 약간의 전율마저 일어날 정도였다. 노동조합 활동을 ‘빨갱이’ 취급받고 연대의 손길 없이 외로이 투쟁하는 몇몇 투쟁가들이 사회의 관심과 연대를 갈구하며 올라가는 곳이 바로 크레인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원에 갇혀 있던 장면에서 일부러 바스트샷을 쓰지 않음으로 세월호 이야기를 다뤘음을 감독이 밝힌 바 있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다른 건물 옥상이 아닌 하필 타워크레인을 선택한 것 역시 감독의 철저한 의도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영화 중반부까지 서로 끈을 묶지 않고 따로따로 움직이던 용남과 의주는 영화 말미 서로의 몸에 끈을 묶고 크레인을 향해 전진한다. 먹고사는 문제에 치닫혀 자신과 같은 처지인 또 다른 ‘을’들과 연대하는 법을 잠시 잊은 20대가 ‘재난’에서 몸을 피하려면 결국 남을 남이라 생각하지 말고 끈을 묶어 연대해야 한다는 감독의 메시지다.


혼자서 잘한다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장편영화로는 첫 번째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작품이었다. 오브제 활용이 기가 막혔고 무거운 주제를 숨이 막히게 다루지도 않았다. 감독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1

류승완이 제작에 참여한 만큼 신파적인 부분은 거의 없었지만 몇 차례 울컥한 장면도 많았다. 실력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

*2

개천의 ‘붕어’ ‘가재’가 여‘의주’를 물어 ‘용남’.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더 이상 20대는 공감하지도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도 않는다. 그러나 ‘붕어 가재로 사는 것도 행복’하고 넌 앞으로 ‘잘 될 거야’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의 자식은 용으로 만드려 한다면 20대는 분노할 수밖에 없겠다. 그건 뭐 자한당이 어쩌고 기자 수준이 어쩌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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