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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Aug 25. 2019

‘비정치적 집회’에 대한 단상

비정치적 집회라는 형용모순(oxymoron)

다만 고려대의 경우 정당인의 집회 참여를 막는 등 정치적 색채는 피했습니다. (중략) 대학가의 이런 움직임은 정치적 이념과 상관없이 정의와 공정이란 잣대로 이번 의혹을 따지려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 서울대 · 고려대생, 조국 향해 '촛불'… 정치 색채는 경계, sbs 뉴스, 20190824


우선 나와 같은 또래 세대인 20대의 분노를 절대 폄하하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두고 글을 시작하려 한다. 다만 이번 집회에 있어 몇 가지 느낀 바가 있어 글로 남겨두려는 것뿐이다. 혹여 이 글을 읽고 본인들의 정당한 분노가 폄훼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의 부족한 글 솜씨 때문일 테니 미리 용서를 구한다.


며칠 전부터 우리 학교 커뮤니티(고파스)가 꽤 시끄러웠다. 조국 후보자의 딸 조민이 고교 시절의 논문으로 고려대를 입학했다는 의혹이 이는 가운데 고려대 입학처가 관련된 기록을 이미 폐기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여기다가 조국 후보자 본인이 과거 우리 사회 기득권의 반칙과 특권에 대해 여러 차례 경종을 울렸던 인사이기에 학우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학우들은 총학생회나 기타 다른 단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집회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23일 저녁 중앙광장으로 모이라는 구호가 뿌려졌다. ‘우리 집회는 어떠한 정치적 색채도 단호히 거부합니다’라는 선언도 함께 공유되었다.


서울대학교 집회도 스스로 ‘비정치적’임을 공공연히 밝혔다.

그런데 비정치적 집회라는 것이 참으로 와 닿지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집회(集會)’는 모을 집, 모일 회, 이 두 글자가 모여 만들어진 단어다. 군중들이 모이는 것이 집회다.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다면 어떻게 군중이 ‘集’하여 ‘會’할 수 있다는 건가. 목적 없는 모임은 시작도 존속도 불가하다. 그리고 그 군중의 ‘목적’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정치적 집회’라는 말은 ‘평화적인 전쟁’이나 ‘뜨거운 아이스크림’ 정도의 형용모순이다.


 ‘비정치적 집회’를 선언하면 다른 집단이 이를 ‘순수한(애초에 집회의 순수성을 누군가가 규정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집회’로 이해해 줄 것이라는 학생들 스스로의 믿음도 탄식을 자아낸다.


원래 정치적이냐 아니냐는 사후적으로 결정되는 문제다. 본인이 아무리 스스로를 정치적 혹은 비정치적 인간으로 설정한다 하더라도, 그를 정치적이냐 비정치적이냐로 규정하는 것은 타자에 의해 이뤄진다. 고려대 집회의 경우 학생증이 확인된 성원만 피켓을 나눠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후보와 정권의 지지자들은 학생들의 집회에 학생이 아니라 보수 세력이 개입된 것이라 주장한다.


심지어 어느 커뮤니티 사용자는 고려대학교 로고에 일베를 합성했다. 비정치적 집회는 다들 순수하게 받아들여 줄 것이라는 믿음은 그래서 야속하기만 하다. 사진출처 클리앙.

집회가 끝난 후 학우들은 이곳저곳에서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본인들의 집회가 특정 집단으로부터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변상욱 cbs 앵커가 청년들의 집회 더러 ‘수꼴 아버지’를 둔 덕이라 말하기도 했다. 결국 우리가 상처 받지 않으려면 차라리 우리가 정치적이라 말하는 것이 낫다.


‘공정성’을 추구하는 것이지 ‘정치적인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그 둘을 굳이 분리하여 들지 말자. 공정성의 요구가 우리의 정치적 요구이며 정치적 색채라고 주장하자. 그것이 우리가 다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목소리가 한데 모일 수 있는 방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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