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채용공고는 연봉을 밝혀두지 않을까

채용 단계는 노동법 사각지대

by Lee
지난 4월 한 대기업의 전문 경력직 사원 채용(3~7년 차 대상)에 응시해 최종 합격한 A 씨의 사연이다. 입사하고 나서 보니 경력직 합격자들의 연봉은 모두 신입사원 수준으로 결정됐다. A 씨는 “채용 공고엔 경력을 명시하고, 연봉도 경력사항을 고려해 결정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따져 물었지만, 인사팀에선 “기존 입사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회사 내규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답만 들었다.

- “이직 공고엔 경력직 뽑는다더니 월급은 신입이랑 같아요”, 한국일보, 20190727


근로계약은 문자 그대로 ‘계약’이다. 계약은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성립한다. 근로계약에선 노동과 그에 대한 대가로서 임금이 오고 간다. 근로계약은 통상 사용자가 구직자보다 갑이다. 근로기준법이 사회법적인 성격을 띠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의 사회법적 성격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해두겠다.)


그런데 근로계약의 갑을관계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요소가 있다. 바로 연봉의 비공개다. 구직 포털에 접속해 채용 공고를 살펴보자. 채용 공고에 연봉을 명시한 기업은 손에 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직자는 지원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는 적고 구직자는 많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의 구인 공고. 다른 기업도 비슷한 실정이다.

생각해보면 너무 이상한 일이다. 앞서 근로계약도 ‘계약’이라 말한 바 있다. 급여를 알려주지 않는 건 물건 팔 때 가격 안 알려주고 파는 것과 같다. 구직자들은 자신의 노동이 얼마에 팔릴지도 모른 채 사용자와 계약을 체결한다. 강화도 조약도 이만큼 불공평했을까?


심지어 면접 당시 지원자에게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봉을 차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실제 약속했던 금액과 입사 후 수령한 급여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실무에서도 종종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이 경우 노동청에 진정을 넣으면 약속했던 소기의 금액을 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법을 조금 아는 독자라면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른바 채용절차법)’ 위반으로 노동청에 신고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해당 법률은 거짓 채용 공고를 금하고 있을 뿐이다.


채용 공고에 임금을 명시하지 않은 기업들은 모두 이 법의 빈틈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채용 공고에 연봉을 명시하지 않고 ‘면접 후 결정’이라 쓰면 더 이상 거짓 채용 공고가 아니게 된다. 현재 국회에 해당 법률의 개정안이 계류 중이지만 묵묵부답이다. 사회적 약자인 ‘취준생’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고용노동부에 관련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그나마 다행일까.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박은정)는 고용노동부에 관련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고용노동부(장관 이재갑)도 권고를 받아들여 채용 절차법 개선에 힘쓰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중소기업이 반발하고 나섰다.


지역 중기업계는 연봉의 강제적 공개는 기업의 경영 정보나 경영 환경을 비공개에 부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움직임에 난처함을 표하고 있다......(중략)...... 뿐만 아니라 대기업 등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는 연봉이 공개될 경우 오히려 구직자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 채용공고에 연봉 공개… 중소기업 "인력난 가중" 난색, 충청투데이, 20180926


‘연봉 공개는 기업의 경영 정보를 비공개로 부칠 수 있는 권리의 침해’ ‘연봉을 공개하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자가 더 줄어들 것’ 중소기업의 반발 논거다.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중소기업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인들의 반발은 설득력이 없다. 기업이 자신의 경영 정보를 비공개할 권리도 있지만, 구직자가 자신이 받게 될 연봉의 정보를 알 권리도 있다. 둘 중 어느 권리가 우선돼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 여러분들께 맡기겠다. 다만 경영 정보를 비공개할 권리라는 논거가 구직자의 알 권리에 심각한 침해를 입힌다는 점은 확실하다.


연봉을 공개하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 것이라는 말에도 어폐가 있다. 취업 포털 사이트 ‘인크루트’가 신입사원 109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견•중소기업 재직자의 퇴사 이유 1위로 연봉에 대한 불만족이 꼽혔다.


연봉을 미리 알려주지 않으니 입사 후 불만족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연봉 불만족으로 근로자가 퇴사하면 기업은 또다시 선발 채용 과정을 거쳐야 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신규 인원 충원 기간 중에 누군가는 퇴사자의 몫만큼 일을 더 해야 한다. 조직 비효율성이 극대화되는 순간이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법 개정안이 두 개나 계류 중이다.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휴가를 더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얼마 받을지 알고나 싶다는 구직자들의 목소리를 언제까지 한 귀로 흘릴 텐가. 구직자들은 면접장에서도 자기가 받을 월급을 감히 물어보지 못한다. 그 와중에 취업 포털은 돈을 받고 특정 기업의 연봉을 회원에게 공개한다. 구직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연봉 정보를 유료로 구매한다.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 같은데, 필자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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